한국일보가 주최하고 KT&G와 하나금융이 후원하는 한국출판문화상 제57회 본심 후보작 50종이 결정됐다. 학술 저술, 교양 저술, 번역, 어린이ㆍ청소년, 편집 등 5개 부문 본심 수상작은 모두 5종 남짓. 예심을 통과한 책들 중에서도 45종은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되지만 사실 최종 수상작들과 차이는 종이 한 장이다.
올해 한국출판문화상 응모작은 모두 619종이었다. 출판불황이 본격화되고 ‘최순실게이트’ 여파로 신간 출간 일정까지 밀리면서 지난해에 비해 응모작 숫자는 다소 줄었다. 그러나 책의 수준은 낮아지지 않았다는 게 지난달 말 한국일보 본사에서 열린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의 분석이었다. 올해 심사에는 인문학자 김경집씨,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백승종 한국과학기술교육대 교수,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씨, 출판평론가 장은수씨, 서평가 이현우씨가 참여했다. 심사위원들에게서 지원작 경향과 출판계 현안 등을 들었다.
김경집 인문학자(전 가톨릭대 교수)
시대적 이슈들이 분출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발빠른 대응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에 걸맞는 완성도까지 갖췄는가에는 의문점이 남는다. 이건 우리 지식ㆍ출판 생태계 전반에 관련된 문제이긴 한데, 이렇게 많고 다양한 책 가운데 우리나라와 세계를 안팎으로 이어주는 시야를 선보이는 책이 거의 없었다. 민족주의라 해도 좋고 뭐라 해도 좋은데 20세기는 너무 우리 안에서만, 우리끼리만 얘기하는 것들뿐이었다. 21세기에는 그 틀을 벗어나야 한다. 그 역할을 어떻게 앞서서 이끌고 나갈 것인가, 출판계도 고민 했으면 좋겠다.
장은수 출판평론가
개인적으로 ‘응전력’이란 표현을 쓰는데, 올해 가장 주목한 지점은 출판계가 시대에 응전해야 한다는 의식이 굉장히 뚜렷해졌다는 점이다. 출판의 오랜 버릇 중 하나가 우린 학습과 교양이니까 시대와 거리를 둬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그런데 올해는 언론이 시대에 응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판이 당당히 이 역할을 떠안았다. 동아시아 출판사의 책들이 대표적이다. 좀 더 빨리, 정확하게, 좀 더 다양하고 좋은 관점을 소개하고 소통하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이게 여러모로 어려움에 처한 한국출판에서 다음 10년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동력이 아닐까, 기대해본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지난해에 과학책 전성시대라 했는데, 올해도 그렇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물리학의 전성시대다. 세상 원리에 대한 근본적인 호기심, 관심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 한가지 고무적인 것은, 드디어 수식을 쓰지 않고 글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물리학자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1980, 9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 교양을 쌓은 이들이 학계에 자리잡고 이제 사회에 뭔가 기여를 하고 싶어한 결과가 아닌가 싶다. 좋은 과학교양서가 많고, 어린이ㆍ청소년 분야에서도 좋은 과학책이 많아 기쁘다. 다만 어린이ㆍ청소년 분야 과학책은 출판사에서 편집 같은 걸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열심히 만든 책이 널리 알려질 기회가 적다는 게 안타깝다. 학교 예산도 도서구입비가 40% 정도 줄면서 어린이ㆍ청소년 시장이 죽었다. 어떤 식으로든 돌파구랄까,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내년에 마중물 독서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시민운동단체나 학교 등과 함께 할 생각이다. 초ㆍ중ㆍ고등학교 과정에 아예 책을 읽고 토론하는 수업을 마련해서 넣어야 한다. 도서관도 사서를 강화해야 한다. 저번에 어느 도립도서관에 갔더니 사서가 겨우 8명이더라. 아이디어를 내서 뭔가 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안 된다. 사서 출신 관장이 나오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해야 한다.
김지은 아동문학평론가
갈리마르 출판사 얘기를 들어보니 ‘해리 포터’ 시리즈가 요즘 다시 팔린다고 한다. 그 책을 보고 자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다시 선물하는 거다. 이런 선순환이 일어나야 하는데 우린 그런 것이 없다. 예전에 책이 귀해서 그렇다지만, 요즘은 독서 교육 풍토 속에서 자라 책을 공부할 때 쓰는 부담스러운 것으로만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독서 교육을 받고 자랐다 한들 본인들 역시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더라도 유행한다는 학습서 위주로 읽힐 뿐 제대로 된 책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부모들을 위한 인문학 교육 같은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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