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북 독자제재안]
북 개인ㆍ단체 국내 자산 없어
실질적 타격 주긴 어려워
남북 경협 가능성도 차단
국내 학자 방북 교류 막아
“대남 제재” 조롱까지 나와
정부가 2일 발표한 대북 독자제재 방안이 북한을 아프게 하는 실효적 효과는 없는 국내용 ‘보여주기 제재안’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조선노동당과 국무위원회 등 북한 핵심기구와 권부 실력자들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으나 실질적 제재 효과는 없고 오히려 차기 정부의 남북 대화나 경협에 장애물만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제재안은 북핵 전문가들의 학문적 교류까지 제한할 수 있는 독소 조항도 담고 있어 ‘대북 제재는 없고 대남제재가 있을 뿐’이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정부는 이번 제재안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최룡해 당 부위원장, 김기남 당 부위원장 등 36명과 조선노동당, 국무위원회, 당 중앙군사위원회 등 35곳의 단체를 금융 제재 대상에 올렸다. 지난 3월 8일 발표한 제재 명단을 확대한 것으로 모두 79명, 69개 단체로 늘었다. 금융제재 대상에 오르면 우리 국민과의 외환 및 금융 거래가 금지되고, 국내 자산이 동결된다. 현 정부가 이미 북한과의 경제 교류를 끊었고, 이들 개인이나 단체가 국내에 보유한 자산도 없다는 점에서 북한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긴 어렵다.
이번 제재안은 남북 경협이나 남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방침을 재차 못 박은 성격이 강하다. 북한 최고 통치 기관인 조선노동당과 국무위원회와의 금융 거래를 금지해 향후 개성공단이나 금강산 관광 사업 재개는 엄두도 낼 수 없게 한 것이다. 또 최룡해나 황병서 등 북한 주요 인사를 제재 대상에 올려 남북 대화 가능성도 사실상 차단했다. 이석준 국무조정실장은 브리핑에서“황병서와 최룡해는 입국 관리 대상이 되는데, 국제행사나 남북대화 가능성을 봤을 때 필요한 경우 여러 측면을 감안해 (입국 여부를)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여지를 남기긴 했으나, 정부가 제재 대상자와 대화 테이블에 함께 앉기는 어렵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실질적인 대북 제재 수단이 없는 정부로선 남북 대화나 경협이 없다는 국내용 선언을 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는 상황에서 나온 이번 제재안이 차기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차기 정부가 남북 경협과 대화를 추진할 경우 이번 제재안이 장애물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차기 정부가 이 제재안을 폐기하고 새 정책을 수립하면 되지만, 폐기 과정에서 여론의 진통을 겪을 수 있다.
제재안은 또 “국내 거주 외국인 중 국내 대학 등에서 활동하는 핵ㆍ미사일 분야 전문가가 방북을 통해 우리 국익에 위해가 되는 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해당 전문가의 국내 재입국을 금지한다”고 밝혀 사실상 학문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 동향 파악과 정보 수집을 위해 북한과 1.5트랙(민관 접촉) 접촉을 갖는 북핵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이 북한 입장을 옹호할 경우 ‘친북 학자’라는 딱지를 붙여 국내에서 쫓아내는 용도로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 내 한 소식통은 “이 정도면 대북 제재가 아니라 북핵 전문가를 겁박하는 대남 제재”라고 말했다.
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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