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죄가 형량 더 무거워
출연금 대가성 여부 따져
기업도 공여자 처벌 가능
‘朴퇴임 대비용’도 재조사
“대통령 꼭 대면조사” 강조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60·구속기소)씨 국정농단 의혹 사건을 수사할 박영수(64) 특별검사가 “검찰 수사 결과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과 최씨 등에게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ㆍ모금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한 것을 재검토하겠다는 의미로, 특검팀이 보다 중한 범죄인 뇌물죄로 수사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관측된다.
박 특검은 2일 기자들과 만나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 (모금의) 본질을 직권남용 등으로 보는 것은 구멍이 많은 것 같다”며 “검찰의 수사 기록을 처음부터 다시 보고, 원점에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구속기소하면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강요의 혐의를 적용했다. 박 대통령 역시 이들과 공모한, 같은 혐의의 피의자로 입건했다.
그 동안 검찰 안팎에서는 직권남용 혐의 적용을 놓고 법리적 논란이 있었다. 안 전 수석 등이 기업에 모금을 강요한 것을 공무원의 직무로 볼 수 있느냐는 반론이다. 기업들이 민원해결이나 사업 특혜 등을 노리고 준 것이라고 본다면 직권남용이 아닌 뇌물죄가 적용된다. 직권남용죄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의 처벌을 받지만, 뇌물죄는 1억원 이상이 오간 경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돼 무기 또는 10년 이상 징역형이 가능해 처벌이 현격히 무겁다. 검찰 내부에서도 두 혐의 적용을 두고 치열한 논의가 있었지만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날 특검의 발언은 직권남용 등 혐의를 뇌물죄(제3자 뇌물)로 변경할 가능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박 특검은 “(대통령이 재단 설립에 대해) ‘문화융성’이라는 명분의 통치행위를 내세울 텐데 그걸 어떻게 깨느냐가 수사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대기업들이 돈을 내게 된 과정이 무엇인지, 거기에 대통령의 역할이 작용한 게 아닌지, 즉 근저에 있는 대통령의 힘이 무엇인지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특검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 기업들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 조사에서는 기업들이 출연금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간주됐지만, 뇌물죄가 적용되면 뇌물 공여자로 역시 처벌대상이 된다. 특검팀은 이들이 수억~수십억원의 출연금을 내게 된 경위나 이유에 대해 기업별로 다시금 따져보면서 대가를 노린 행위였는지 여부를 추궁할 공산이 크다. 특히 재단의 실체가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해 만든, 대통령을 위한 것인지’도 재조사 대상이다.
또 박 특검은 하이라이트가 될 박 대통령 조사를 반드시 대면조사로 하겠다고 강조했다. “서면조사는 시험 보기 전에 답안지를 미리 보여주는 것으로 바로 대면조사를 하겠다”며 조사 방식에 있어서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박 대통령 측이 “특검의 직접 조사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천명했지만, 향후 조사 방식 등을 조율하면서 입장을 바꿀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박 특검은 지난 2008년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BBK 특검’에서 특검보로부터 조사를 받은 전례가 있지만, 이번 대상은 현직 대통령인 만큼 자신이 직접 조사하는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 특검은 이날 특검보 후보자 8명을 청와대에 추천했다. 후보자는 모두 검사와 판사 출신이다. 대통령은 3일 안으로 이 중에서 4명을 선정, 특검보로 임명해야 한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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