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인어 심청(전지현)은 사람의 기억을 지우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1일 방영된 6회에선 이 ‘기억’과 관련해 의미심장한 에피소드가 그려져 눈길을 끌었다. 교통사고로 입원한 심청과 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한 엄마의 만남이다. 의료사고로 딸 예은이를 잃은 엄마는 딸에게 해주지 못한 일들을 떠올리며 슬퍼한다. 심청이 슬픈 기억을 지워주겠다고 해도 눈물 젖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무리 아파도 가지고 갈 거예요. 아파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우리 딸 기억하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보다 아파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게 나아요.”
제작진은 “인어의 순수한 눈을 통해 우리 모두가 무심코 지나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상처 받은 사람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보듬고자 했다”고 이 장면을 설명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등장 인물의 대사를 통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떠올렸다. “우리 예은이 너무 착해서 엄마 돕겠다고 수학여행도 안 간 애예요.” 세월호 희생자와 같은 이름, 수학여행, ‘진실을 요구한다’는 내용의 시위 피켓, 기억하겠다는 다짐. 제작진이 의도했든 안 했든 시청자들은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날의 ‘기억’을 다시금 환기했다. 드라마 커뮤니티에는 “아프지만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기억이다”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는 동시대와 호흡하는 대중문화 영역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주제다. 시대를 직시하고 공감의 힘으로 아픔을 치유하는 데 대중문화의 본령이 있기 때문이다. ‘푸른 바다의 전설’은 은유로서의 바다와 기억에 대한 시청자들의 풍부한 해석을 통해 점차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위로와 공감을 넘어서 조금 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드라마도 있다. 9일 첫 방영을 앞둔 JTBC ‘솔로몬의 위증’이다. 이 드라마는 친구의 추락사에 얽힌 비밀을 직접 찾아 나선 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진실을 감춘 채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어른들과 위선에 가득 찬 세상을 향해 아이들은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선전포고를 한다. 진실을 추적하며 교내 재판을 벌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당한 현실을 방관해온 어른들의 무능과 무력함을 반성하게 한다.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미야베 미유키의 동명 베스트셀러가 원작으로,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사회 인식이 한국 사회의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제작 관계자는 “어설프게만 보였던 아이들이 세상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 성장해 간다”며 “드라마 속 상황이 세월호 참사와 닮아 이와 관련해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사회에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에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재난영화들도 세월호 참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7일엔 또 하나의 세월호 영화라 회자되고 있는 ‘판도라’가 개봉한다. 영화 속 원전폭발사고의 참상과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이 현실과 꼭 닮아 있다. 몇몇 장면과 대사는 꽤 직접적이기도 하다. 올 여름 개봉한 영화 ‘부산행’과 ‘터널’도 재난 상황을 통해 한국 사회를 꼬집으며 관객들의 지지를 얻었다. ‘판도라’의 흥행에도 현 시국이 가장 큰 동력으로 작용할 거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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