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도 삶의 일부분인데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꾸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여야지요. 그래서 이번 시집도 죽음을 이겨내자는 뜻으로 썼습니다.”
시인 황동규(78)가 열여섯 번째 시집 ‘연옥의 봄’(문학과지성사)을 펴냈다. ‘사는 기쁨’ 이후 3년 만인데 두 시집의 제목이 삶과 죽음이라는 확연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죽음(연옥) 속에 삶의 기운(봄)이 생동한다는 점에서 두 시집은 같은 맥락을 타고 흐른다. 황 시인은 지난달 28일 만나 “아픔을 통해서 삶을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지난 시집의 주제였다면 이번 시집은 죽음을 이기자는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연옥의 봄’은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자는 낙관을 담아서인지 분위기도 전작에 비해 한층 밝아졌다. 그는 “늙어가는 고통도 이기고 가까운 친구의 죽음도 이기며 죽음에 대한 훈련이 돼 있어서인지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했다. 시집의 첫 시 ‘그믐밤’도 지난해 아끼던 제자를 떠나 보낸 뒤 쓴 것이다. 미국으로 건너가 의사가 됐던 ‘강화도 친구’를 저 세상에 보낸 뒤에는 ‘견딜 만해?’를 썼다.
슬픔과 고통을 압도하는 것은 낙관의 유머다. 재작년 세상을 떠난 절친했던 문학평론가 김치수에게는 ‘거기서도 스마트폰 눌러 피자 배달 받을 수 있는가?’(‘봄비’)라고 농을 던진다. 삶은 그 자체로 역설일지 모른다. 새 생명을 재촉하는 봄비 속에서 시인은 죽은 친구의 기척을 느낀다. ‘감각에 돋는 소름, 치수구나! / 어디부터 다시 함께 걸었지? 가만, 간 지 얼마 안 되는 저세상 소식 같은 거 꺼내지 않아도 된다. / 너 가고 얼마 동안 나는 생각이 아팠다. / 그저 말없이 같이 빗속을 걷자. / 봄 길에 막 들어서는 이 세상의 정다운 웅성웅성 속에 / 둘이 함께 들어 있는 것만으로 그저 흡족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시를 썼다. 사람의 죽음뿐만이 아니다. ‘문학은 죽었다’면서 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할 때도 그는 ‘소설이나 시가 아니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문학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믿으며 시를 썼다. 좋은 문학은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인간의 고통과 죽음, 문학의 죽음, 이 모든 것을 극복하는 것이 이번 시집의 핵심이다.
소설가 황순원의 아들로 태어난 시인은 서울대 영문과를 나와 모교에서 교수로 정년퇴직했다.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호암상 등을 받으며 예술성을 인정받았지만 “아버지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생각에 예순 전에는 좌절도 많이 했다”고 회고했다.
1958년 ‘즐거운 편지’로 등단한 황 시인은 58년째 쉼 없이 시를 쓰고 있다. 그가 계속 펜을 들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시인은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한 순간”이라고 답했다. “삶과 죽음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느끼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붙잡게 하는 것이 삶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는 앤절라 휴잇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불꽃에 가까이 다가가는 날벌레를 상상하며 ‘너희들 몸통에 곧 댕겨질 저릿저릿 불꽃에 / 내 발가락 끝이 벌써 자릿자릿, / 죽고 사는 일보다 감각 잃는 게 더 못 견디겠는 저녁이다.’(‘앤절라 휴잇의 파르티타’)라고 썼다.
시인은 이번 시집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연옥의 봄’ 이후 써놓은 10여편 외에 충분히 더 쓸 수 없다면 더 이상 시집을 낼 수는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적 긴장이 사라진다면 그만 써야지요. 10년 전에 비해 이젠 힘이 부쳐요. 지금까지 써놓은 것에 10여편 더 쓴다고 시집을 낼 순 없잖아요. 내가 죽고 난 뒤에 유고집을 낼 수는 있겠죠. (웃음)”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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