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현은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책보세, 2013)에서 18대 대통령 선거가 명백한 부정선거였다고 말한다. 보수언론이 이 책을 무시한 것은 당연하다. 정작 놀라운 것은 지은이의 문제 제기에 귀 기울여야 했던 진보(좌파)언론마저 이 책을 통째 기피하고 부정했던 것이다. 당장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알 수 있지만, 이 책이 출간된 직후 유독 ‘한국일보’만이 두 차례의 칼럼을 통해 지은이의 주장을 의미 깊게 다루었다.
이 책의 제목은 하나의 사태를 가정(假定) 완료하고 있다. 하므로 지은이는 이 책에서 18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것을 새삼 밝혀주는 새롭고 화끈한 증거를 제시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것은 국정원ㆍ국방부 사이버사령부ㆍ서울경찰청 같은 국가 권력 기관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고 개입했던 것만으로도,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남는다. 이 책이 문제 삼는 것은 부정선거 이후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부정선거였다는 것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더 잘 안다. 이들은 선거 직후에 분출된 부정선거 의혹에 한 번도 “공정선거다”라고 응대하지 못했다. 이들이 되풀이했던 “국정원 덕을 본 적이 없다”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라는 변명은, 부정선거 의혹을 반박하며 공정선거를 천명한 게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선거부정을 저지르기는 했으나 당락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면, 그 선거를 공정선거라고 해야 한다’는 망발을 할 사람은 많지 않다. 때문에 청와대와 보수언론은 지켜내기 힘든 ‘공정선거다’를 일찌감치 포기하고, “대선에 불복하는 것인가”라는 역공을 취했다. 내 한 표가 왜곡 당한 시민, 승리를 도둑맞은 민주당, 부정선거를 논의해야 할 진보(좌파)언론은 이들의 ‘불복 프레임’에 수그러들었다.
‘부정 선거’와 ‘공정 선거’를 가리지 않는 불복은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기는커녕 결과를 트집 잡는 졸렬하고 구차스러운 사람, 어떻게든 놓쳐버린 승리를 다시 빼앗아오기 위해 혈안이 된 몰상식한 사람을 연상시킨다. 나아가 불복은 대의 민주주의의 바탕인 선거제도를 파괴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려는 최악의 책동이 아닌가. 청와대와 보수언론이 만든 틀짓기에 포박된 결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박근혜 씨에 반대하지만 이런 몰상식한 발언은 오히려 진보를 해친다”라는 진보 진영의 협공마저 받게 되었다. ‘한겨레’를 위시한 진보(좌파)언론은 ‘보수 세력에게도 칭찬받는 합리적 진보’라는 자승자박으로 이 책을 외면했다. 부정선거라는 중죄를 지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승복과 불복이라는 개념을 공정선거 여부와 무관하게 사용”했고, 윤리적 강박에 사로잡힌 진보(좌파)는 그것에 맥없이 승복했다. 이런 복종은 민주주의 국가의 원칙이 아니다.
18대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 19일, 당시의 박근혜 후보 선대위 공보단장이었던 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측의 불법선거 운동이 도를 넘어 자행되고 있다, 설령 문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선무효 투쟁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문 후보가 불법선거 운동을 하고 나서 당선된다고 해도 당선무효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가 주장한 문재인 후보의 불법선거운동이 아무런 근거 없는 흠집 내기가 아니었다면, 설혹 문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도 당선무효 투쟁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정현이야말로 부정선거로부터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결코 승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자였다.
‘부정선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선거 중에 국정원과 서울경찰청장의 불법 선거개입이 드러났을 때 민주당은 “선거를 중단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거나, 선거 후에는 “하야와 재선거밖에는 다른 어떤 결론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2013년 4월, 국정원 정치ㆍ선거 개입 특별수사팀 팀장을 맡았던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부정을 파헤치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랬던 그가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돌아왔다.
장정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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