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일 청와대 칩거를 풀고 대구 중구의 서문시장 화재 현장을 방문했다.
최순실 게이트로 퇴진 압박을 받는 박 대통령이 외부 일정에 나선 것은 10월27일 부산에서 열린 지방자치의 날 행사 참석 이후 35일 만이다. 서문시장에는 지난달 30일 대형 화재가 나 점포 4,600곳 중 약 700곳이 불탔고, 박 대통령은 하루 만에 대구 행을 전격 결정했다.
박 대통령은 15분 간 피해 현장을 조용히 둘러본 뒤 “지금 상황에서 여기 오는 것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면서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이 큰 아픔을 겪고 계시는데 찾아 뵙는 것이 인간적 도리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서문시장 상인 여러분들은 제가 힘들 때마다 늘 힘을 주시는데 너무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이어 화재 피해 지원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강석훈 청와대 경제수석에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인간적 도리’를 강조했지만, 이날 행보가 보수층 재결집으로 최소한의 국정 동력을 회복하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서문시장이 대통령이 반드시 둘러봐야 할 ‘국가적 재난 현장’이라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3차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 퇴진 일정과 절차 결정권을 국회로 넘긴 것의 ‘진정성’을 둘러싼 의심도 커지고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담화 발표 하루 만에 5ㆍ16 군사정변을 “역사의 필연”이라고 옹호한 최성규 목사를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장(장관급)에 임명해, 보수ㆍ진보 분열을 유도하려는 게 아니냐는 논란을 불렀다.
대구 서문시장은 박 대통령을 향한 대구ㆍ경북(TK)의 콘크리트 지지 민심이 응축된 곳이다. 박 대통령은 2004년 탄핵 역풍으로 난파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대표를 맡았을 때,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치를 때, 2012년 대선에서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일 때 등 정치적 고비마다 서문시장을 찾았다. 대통령 취임 후엔 지난 해 9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방문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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