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무리 찬란했던 시대도 언젠가는 저문다. 그런데도 그 끝자락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건 그 시절의 향수 때문이겠지만, 막이 내리고 관객은 떠났는데 배우 홀로 무대에 남아 있는 거나 다를 게 없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마지막 황제’(1987년 작)는 이같이 변혁기의 모순적 상황에 놓인 비운의 주인공을 다룬 영화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는 1908년 세 살에 황제에 즉위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신해혁명이 발발하고 중국은 ‘왕의 나라’에서 ‘국민의 나라’로 바뀐다. 환관에 둘러싸여 자금성 안에서 허울뿐인 통치자로 살았던 푸이는 이런 세상의 변화를 모르고 살다가 1924년 군벌에 의해 궁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그토록 동경하던 자금성 바깥세계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자신이 대대로 내려오는 만주국의 영도자라고 생각한 그는 일본의 감언이설에 빠져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만주국 황제를 지내고 결국은 전범 신세가 된다.
전범수용소에 갇힌 푸이는 혼자선 신발끈을 매지도,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신분제도 철폐와 시민의 권리 보장으로 세상이 달라졌지만 그의 인식은 여전히 절대군주가 통치하는 봉건시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랬던 푸이가 노후에 수용소를 나와 식물원 정원사로 일하면서 비로소 일상의 행복을 누리던 장면이 기억난다.
오래 전 영화를 떠올린 건 최태민에서 최순실로 이어지는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을 방치해 ‘아무 것도 모르는 공주’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 영애였던 박 대통령은 어린 시절을 청와대에서 보냈고, 6년간 퍼스트레이디 역할도 맡았다. 유신 시절 ‘퍼스트레이디 박근혜’가 지방 행사에 가면 노인들이 그 앞에 엎드려 절을 했다는 회고담이 이어지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떠받들려 살았을지 짐작된다. 한 여권 인사는 이렇게 비유했다. “3선 시장을 12년만 해도 식당 예약도 제대로 못하는 무능력자가 된다. 하물며 공주로 태어난 박 대통령은 어떻겠나.”
17년 간 최순실 일가의 일을 봐준 전직 운전기사의 증언은 더 직설적이다. 그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옷이나 화장품 구입은 물론이고 시장이나 은행 가기 같은 일상 생활을 최씨에 의존했다. 그런 박 대통령을 향해 최씨는 “자기가 아직도 공주인줄 아나 봐”라고 자주 흉을 봤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이 무심코 내어준 그 곁이 지금 비선실세의 권력이 자라게 한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지금 와서 박 대통령이 진짜 공주처럼 살았는지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그가 ‘국민의 나라’가 아니라 ‘아버지의 나라’를 꿈꿨다는 국민의 의심을 걷어낼 수 있느냐다. 최순실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역사교과서를 고치면서까지 아버지 시대를 복원하는 데만 정신이 팔린 대통령. “모든 기준이 국민이 아니었던 거 같다”는 한 야당 의원의 황망함은 불행하게도 이제 대부분의 국민이 공유하는 정서가 됐다. 그런 점에서 촛불민심은 레임덕이 오면 정권의 실책을 공격하던 이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최순실 사건을 계기로 난해했던 불통 리더십의 원인이 퍼즐 맞추듯 풀리자 실망과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에 가깝다.
박 대통령의 거취를 두고 정치권의 혼선이 극에 달하고 있다. 구체제의 시간 속에서 살아온 그가 푸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탄핵안 소추가 임박했는데도 퇴진 시점을 못박지 못하고 국회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을 보면 아직은 미련이 많아 보인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푸이의 자서전 ‘황제에서 시민으로(From Emperor To Citizen)’가 원작이다. 박 대통령도 이제 유신 체제의 공주에서 일반 시민으로 내려와야 한다. 이왕이면 시대착오를 인정하고 박정희 시대의 끝자락도 과감히 놓으면 어떨까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강제 축출이냐, 명예로운 퇴진 허용이냐의 갈림길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다. 정치부 김영화 차장 yaa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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