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주도하던 야권이 자중지란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29일 자신의 거취 문제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박 대통령의 모호한 조기 퇴진 선언 이후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누구보다도 냉철한 대응을 해야 할 정치권이 상황변화 앞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양새라 사태 장기화가 걱정될 정도다. 정국혼란 조기 수습과 국정 정상화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만 더욱 답답하게 됐다.
야권의 분열은 보기 딱하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2일 탄핵소추안 표결 처리를 위해 1일 발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겸 비대위원장은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반대로 발의를 해도 통과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박 비대위원장의 주장이 현실적인 판단이지만 속내는 민주당 추 대표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추 대표는 이날 오전 새누리당 비박계를 이끄는 김무성 전 대표와 만나 박 대통령 퇴진 시기 등을 협의했다. 전날 야 3당 대표회동에 참석해 여당과의 퇴진협상에 응하지 않기로 한 합의를 뭉개고 벌인 독단적 행동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물론 민주당 내에서도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달 14일에도 독단적으로 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 나섰다가 파기해 야권공조에 큰 흠집을 냈는데 또 같은 행태를 되풀이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날 국민의당의 거부로 정족수인 재적의원 과반을 채우지 못해 탄핵 발의가 불발한 데는 추 대표의 돌출 행동의 책임이 크다. 이 와중에 2일 탄핵안 표결은 불가하다는 국민의당은 여론이 악화되자 5일 표결 처리를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본회의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 야권 전체가 자중지란에 빠진 형국이다.
반면 새누리당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내년 4월 말 대통령 퇴진과 6월 대선을 만장일치 당론으로 채택하면서 비주류를 포함해 일단 단일대오를 형성했다. 탄핵을 요구하던 비박계가 국가원로와 친박 중진의 대통령의 조기 퇴진안을 사실상 수용한 결과다. 비박계가 퇴임 시기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확답을 전제로 요구하면서 9일 탄핵 참여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기는 하지만 흐름은 탄핵이 아닌 자진 퇴진 쪽에 더 기운 것으로 보인다.
야 3당 대표가 이날 오후 다시 만났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해 정국 해법은 한층 복잡해졌다. 조건 없는 조속한 하야를 요구하며 조기 퇴진 협상은 없다는 야권의 방향 전환 여부가 변수다. 야권만의 탄핵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새누리당 비박계의 협조와 상관없이 촛불민심에 의지해 탄핵을 계속 밀어붙일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여당 쪽에서는 박 대통령의 퇴진 시기 확답을 받을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자세를 고수해 모호성을 키우고 있다.
결국 탄핵과 조기 퇴진, 명분과 현실 사이에서 여야 다수의 힘이 어디로 쏠리느냐는 문제만 남았다. 야권의 탄핵 표결 예정 시한인 9일까지는 길지 않지만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야권이 여당과의 협상 자체를 기피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여야가 목전의 정치적 타산이 아니라 성난 민심을 염두에 두고 하루빨리 정국 혼란을 수습할 방안을 도출하길 촉구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