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자국에 진출한 롯데그룹에 대해 고강도 세무조사와 소방ㆍ위생점검에 나섰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의 주한미군 배치에 반대하는 중국 정부가 한류 규제에 이어 한국기업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제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일 주중대사관과 롯데그룹 등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지난달 29일부터 중국 현지에 진출한 롯데 계열사의 전 사업장에 대한 세무조사 및 소방안전ㆍ위생점검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상하이(上海)의 롯데 중국본부를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는 구(區)세무서에서 실시하던 이전과 달리 이번에는 상하이시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베이징(北京)과 상하이, 청두(成都) 등지의 150여개 롯데 점포에는 일시에 소방안전 및 위생 점검단이 나와 조사를 벌이고 있고, 롯데케미칼ㆍ롯데제과 등의 공장에서도 점검이 진행 중이다. 특히 선양(瀋陽)과 청두의 롯데캐슬 모델하우스에 대해서는 폐쇄까지 요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그간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중국 내 사업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없었는데도 중국 당국이 이례적으로 고강도 세무조사에 나선 것”이라며 “사드 문제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 조치 외에는 달리 이유를 설명할 길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이번 조치가 지난달 16일 경북 성주 롯데골프장이 사드 부지로 최종 확정된 이후인데다 최근 한류 연예인의 출연을 제한하는 금한령(禁韓令)이 확산되는 와중에 한국기업 제재 가능성이 거론돼왔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롯데그룹에 대한 세무조사ㆍ소방안전 점검과 사드와의 관련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겅솽(耿爽)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롯데그룹의 경영과 관련한 문제에 대한 상황을 알지 못한다”면서 “관심이 있으면 유관부문(당국)에 문의하라”고 말했다. 겅 대변인은 대신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는 데 대해 결연히 반대하는 우리의 입장은 매우 명확하다”고 강조했다. 중국 당국의 이번 조치에 대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으면서도 사드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시함으로써 실질적인 경고와 함께 보복 조치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주중대사관 측은 “중국 당국이 롯데에 대해 소방ㆍ위생ㆍ세무 등 다방면에 걸쳐 동시다발적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면서 “우리 기업이 부당한 차별적 대우를 받지 않도록 다각적으로 대응책을 검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사관 측은 또 “현재까지 다른 기업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조치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롯데그룹은 중국 당국의 갑작스런 조사에 당황하며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겨울에는 화재 발생 위험성이 높아지는 점 때문에 소방 점검을 받긴 하지만 불시에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며 “국내 기업들이 몇 년마다 세무조사를 받는 것처럼 중국정부의 세무조사가 정기적인 건지 아니면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성격인지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최근 금한령을 확대하는 추세이고 일각에선 중국 내 한국제품 광고 금지설까지 나돌고 있다. 또 전기차 배터리와 화장품, 분유, 식품, 폴리실리콘, 폴리아세틸 등을 대상으로 한 비관세장벽과 반덤핑 규제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지난 7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우려했던 중국의 보복 조치가 미국의 정권 교체기와 한국의 정국 불안정을 계기로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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