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대형화재 불구 보상책 막막
일부 상인만 한도 3000만 원 가입
전통시장은 '보험가입제한업종' 탓
“우리도 2억, 3억짜리 보험에 들고 싶어요. 그런데 3,000만 원짜리도 안 받아주고 있으니…. 우린 뭐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고 딴 나라 국민인가요?” 지난 1일 화재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대구 서문시장 4지구 상인들. 677개 점포 상인들은 적게는 수천만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의 피해를 보았지만 대부분이 한 푼의 보상금도 받을 수 없어 망연자실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개별적으로 화재보험에 들었지만, 보상한도는 3,000만 원이 최고다. 이마저도 받을 수 있는 상인은 전체 상인의 20%가 채 되지 않는다.
서문시장 등 화재에 취약한 지역 전통시장들. 화재보험 가입이 어디보다 절실한 곳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위험지역으로 인식돼 보험가입은 하늘의 별 따기다. 전통시장상인들은 “상인들 스스로 불조심을 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보험에 가입하고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서문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이번 화재로 인한 물품 피해액은 1,000억 원을 넘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연말연시와 설 명절에 대비, 기념품이나 한복, 원단, 남녀속옷 등을 천장에 닿을 정도로 많이 들여다 놓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험 가입률은 극히 낮다. 류승재 서문시장상가연합회 부회장은 “1일 낮까지 파악된 보험가입금액은 건물 76억 원, 동산 38억 원”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피해는 고스란히 상인들 몫이다. 정부지원 등이 있더라도 피해회복엔 턱없이 부족하다.
한 상인은 “화재보험에 들고 싶었는데 받아주지 않았다”며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이번처럼 불이 날 수 있는데 보험사에서 안 받아주면 어떡하냐”며 울먹였다.
가입하더라도 보장한도가 최고 3,000만 원에 불과해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산상가에서 의류점을 한다는 이모(48ㆍ여)씨는 “보험사 직원한테 사정사정해서 연간보험료 5만원, 보장한도 1,500만 원짜리를 들었다”며 “가게에 쌓아 둔 제품이 많아 1억, 2억짜리라도 들고 싶은데 아예 안 받아준다”고 하소연했다.
2005년 화재로 재건축한 2지구는 방화벽이 설치돼 있고 상대적으로 큰 도로를 끼고 있지만 기피지역이긴 마찬가지이다. 성락인 2지구 2층 상인회장은 “서문시장 자체가 화재다발지역으로 분류돼 우리도 안 받아준다”며 “예전에 대출을 받았을 때는 받아주더니 다 갚고 나니 외면하더라”고 말했다.
칠성시장 남문시장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칠성시장 관계자는 “개별 가입률은 10%도 되지 않을 것”이라며 “보험을 잘 받아주지도 않는데다 불이 나도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식료품 취급점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손해보험사들이 화재 위험이 높은 전통시장을 ‘보험가입제한업종’으로 분류하고 제한적으로 받아주기 대문이다.
손보업계 한 관계자는 “서문시장처럼 불이 자주 나는 전통시장은 가입이 어렵다고 보면 된다”며 “자동차 책임보험 공동인수제처럼 부동산 1,000만 원, 동산 3,000만 원 한도 내에서 보험사별로 정해진 쿼터 안에서 받아준다”고 말했다. 쿼터가 다 차면 신규가입이 불가능하고, 누군가 해약해야만 다른 사람이 가입할 수 있는 구조다. 이 때문에 서문시장은 전체 상인 중 보험가입 업소는 많아야 15% 정도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또 “전통시장이라도 대로변이나 재건축을 통해 방화벽,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이 확충된 곳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하지만 대형할인점이나 백화점 등 현대시장과 비교하면 화재위험이 크고, 단위면적당 상품을 너무 많이 쌓아둔데다 소방차 진입통로가 불량해 한번 나면 피해규모가 클 수밖에 없다”며 기피 이유를 설명했다.
지역 전통시장의 상인들은 “민간보험 가입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정부가 나서서 화재예방시설 확충과 공제회설립 등 근본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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