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 왜 그렇게 병원이 자주 나오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드라마가 다루는 것이 결국 인간의 생로병사 속 희로애락이라면, 대부분 사람이 병원에서 나고 죽는 현대사회에서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더구나 별 개연성 없이 주인공을 죽이고 살리기 위해서는 갑자기 중병에 걸리든가 계단에서 구르든가, 그도 아니면 교통사고를 당해야 하니, 막장 드라마일수록 병원 장면이 많아지는 것일 터이다.
막장 드라마를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건만, 지금 청와대를 주 무대로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를 통해 까발려지는 한국 의료의 선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비아그라와 팔팔정까지는 실제 고산병 예방을 위해 사용되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받았다는 시술 목록은 시중에서 좋다는 항노화, 미용 치료 모두를 포괄하고 있으며, 변칙진료를 받았다는 장소만도 관저에서부터 차움의원, 서울대병원 강남센터에 이른다. 황우석 사태 당시부터 줄기세포산업과 정치권 유착에 대해 소문이 떠돌았고 지난 7월 차병원에 대해서만 체세포 복제배아에 대한 연구허가가 나왔을 때도 특혜 논란이 일었지만, 대통령과 측근들이 단체로 ‘줄기세포 마니아’라는 상황을 예측하지는 못했다. 지금 드러난 상황들을 누가 예전에 이야기했다면 아마 음모론자로 몰리거나 과한 이야기로 취급받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상황은 시중의 음모론 수준도 가볍게 넘어섰다고 봐야 할 지경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하는 정치 막장 드라마와 변칙의료가 이렇듯 얽히고설키게 된 것을 두고 그저 놀랍다는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한국 의료체계가 망가지고 붕괴해왔음을 감안할 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사실 놀랍지만 동시에 놀랍지 않고, 몰랐지만 반드시 몰랐다고 하기도 어렵다. 시민사회가 의료민영화와 영리병원 정책이 공식화되는 것을 저지하려 애쓰는 동안, 실질적으로 영리병원이나 다름없이 운영되는 병원들이 늘어나고 있고, 최고 의학적 권위를 자랑한다는 서울대병원은 공공성을 버리고 온갖 수상쩍은 사업에 손을 대면서 의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려운 일들을 벌여 왔음을 사회도 언론도 모르지 않았다. 다만 이것이 이렇게 직접 대통령과 그 측근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몰랐을 뿐이다.
온갖 줄기세포치료가 희귀 난치병 환자들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현실적으로 의료는 점점 고가 상품이 되어가고 있으며 현재 의학 수준으로 가능한 치료조차 고루 시행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불로장생이라는 헛된 꿈을 이루기 위해 줄기세포치료를 비롯해서 제대로 의학적 검증도 되지 않은 여러 치료에 목을 매고 살아온 상황의 일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뿐이다. 특히 태반주사나 마늘주사 등 주사제는 건강에 필수적인 치료보다는 보험적용을 받지 않는 종목을 개발하는 데 몰입해 온 일부 개원 의료인들이나, 피로에 찌들어 몸에 좋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보려 하는 보통사람들이 흔히 접해본 것들이다.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서 정식 의료진들이 시행하지 않았다는 대통령 주치의 해명이 새삼 공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따라서 대통령이 큰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의 퇴진은 더 큰 개혁의 출발점이지 끝이 아니라는 것은 의료분야에도 해당된다. 한국사회에서 의료에 관한 논의는 무상의료나 보험의 확대적용같이 비용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문제를 넘어 더 근본적인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시점에 왔다. 지금 이게 의료인가, 과연 사는데 필요한 의료란 어떤 것이며, 시민들 누구나 누려야 할 필수의료의 영역은 어디까지인지가 사회적으로 합의되고 나서야 비용의 문제에 대한 정치적 해결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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