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려 놓은 박항서(사진) 당시 수석코치가 환하게 웃고 있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한국스포츠경제 박종민] 2002 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70) 감독과 함께 한국 축구를 4강에 올려놓은 박항서(57) 당시 수석코치가 슈틸리케호에 뼈있는 조언을 건넸다.
지난달 30일 통화한 박 전 코치의 말투에선 조심스러움이 묻어났다. 슈틸리케호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입장이라 정확한 평가가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울리 슈틸리케(62•독일) 감독이 이끄는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달 우즈베키스탄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5차전에서 2-1로 이겼다. 한국은 3승1무1패 승점 10으로 조 2위가 됐다. 그러나 경기력은 여전히 불안하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박항서 전 코치는 이에 대해 "소통 문제 등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우선 감독의 팀 장악이 잘 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운을 뗐다.
박 전 코치는 "둘째는 최종예선에 앞서 비교적 수월한 팀들을 상대했다. 쉽게 이기고 호평을 받으며 올라와 최종예선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나 준비가 덜 된 듯하다"며 "전략, 전술 등은 감독 고유의 권한이라 왈가왈부 못 하겠지만, 선수를 자주 바꾸는 것은 조금 의아한 부분이다. 앞선 예선 때 선수 테스트를 마치고 최종예선에선 정예멤버로 가야 하는 데 아직도 선수들을 시험하는 느낌이다"고 아쉬워했다.
박항서 전 코치에게 한일월드컵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너무 오래된 일이다"고 웃은 그는 "대회가 홈에서 열린 데다 준비 시간도 충분해 선수단, 코치진, 의무팀 등 조직적 역할 분담이 잘 됐다"고 말했다. 이어 "히딩크 감독님은 약 2년간 리더십을 발휘하며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시켰다.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했고 선수들도 역할에 충실했다"며 "국민의 응원도 힘이 됐다"고 회상했다.
'히딩크 감독이 경직된 그라운드 선후배 문화를 유연하게 바꾼 것으로 안다'고 하자 박 전 코치는 "감독님은 한국의 선후배 문화를 존중했다"며 "다만 그라운드에서만큼은 그런 부분이 경기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해 선수들에게 제안을 하셨다. 예를 들어 고참 홍명보(47)가 그라운드에서 집중력이 흐트러져 있다면, 후배 박지성(35)이 '명보야, 정신차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고 했다. 박 코치는 "당시 고참 선수들이 감독님의 얘기를 듣고 후배들한테 그렇게 하자고 결정한 것으로 안다. 물론 식당 등 다른 곳에선 그러지 않았다"며 웃었다. 그는 "처음에는 선후배가 따로 식사하는 분위기였는데 이후엔 같이 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소통도 잘 이뤄졌다"고 떠올렸다.
▲ 2002 한일월드컵에 나섰던 박항서(왼쪽) 전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수석코치와 최용수. 둘은 2014년 FA컵에서 각각 상주 상무 감독과 FC서울 감독으로 만났다./사진=대한축구협회(KFA) 제공.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도 털어놨다. 박 전 코치는 "조별리그 마지막 포르투갈전(1-0) 승리로 16강 진출을 확정했을 때 고(故) 김대중 당시 대통령께서 격려차 선수단 라커룸을 방문하셨다. 병역혜택 얘기가 나돌 때였는데 주장 홍명보가 그런 부분에 대해 건의를 했다"며 "대통령께선 적극 검토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셨고, 우리는 다같이 박수를 쳤다. 다음날 신문에서도 긍정적인 기사들이 나왔는데 그때 선수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 4강까지 오르게 되지 않았나 한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박항서 전 코치는 "외국인 감독님이시다 보니 문화적인 면에서 의견 충돌도 있었지만, 나는 수석코치로서 감독과 선수의 가교 역할에 충실했다. 선수단의 분위기, 문제점 등을 전하는 것은 물론 선수별 기량과 성격 등 구체적인 부분을 알려드렸다"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팀2002'의 홍명보, 황선홍(48), 김병지(46), 최용수(43) 등 고참 선수들과는 편하게 얘기하고 소주도 마신다"며 "나를 '박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했다. 이어 "매년 12월 '팀2002' 회동이 있다"며 당시 멤버들을 만나는 것에 대해 기대했다.
박항서 전 코치는 작년 12월 K리그 클래식 상주 상무 감독직에서 물러난 후 축구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다녔다. 최근에는 대한체육회와 함께 '박항서 리더십 축구교실'를 열어 다문화 가정, 소년원 등의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재능기부도 했다.
그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대체로 밝게 내다봤다. 엘리트 축구와 K리그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좋은 선수들이 K리그를 외면하고 더 상위 리그도 아닌 중국 등에 가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박 전 코치는 "금전적인 부분이 클 것이다. 방법론을 제시할 순 없지만, 리그 자생력이 커져 충분한 보상이 선수들에게 돌아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K리그 지휘봉을 다시 잡고 싶느냐'는 물음에 박 전 코치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축구다. 지도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잡고 싶다. 축구인은 그라운드에 있어야 하지 않나"고 답했다. 진지한 목소리에서 한국 축구에 대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다.
박종민 기자 mini@sporbi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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