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강제동원 기업들 불만
창조경제센터 지원 대기업들
“계속 운영해야 할지 고민”
미래부 “기업들 자발적 참여”
“지금이 ‘창조경제’ 홍보할 때냐. 대 놓고 거절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참가했다.”(A기업 임원)
“정부의 일방적 행사 강행에 장단을 어디까지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 기업 이미지만 안 좋아질까 우려된다.”(B기업 대표)
1일부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나흘간 열리는 ‘창조경제박람회’에 동원되는 기업들의 한숨 소리다. 2013년 시작된 창조경제박람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 추진 현황을 알리고 성과를 공유하는 자리다. 정부 주최의 창조경제 관련 연간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지난해는 10만여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그러나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각계 지적이다. 창조경제박람회를 공동으로 주최하는 민관합동창조경제추진단은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인 차은택(47ㆍ구속기소)씨가 단장으로 활동했던 곳이다. 전국 17개 창조경제혁신센터의 홈페이지 구축을 맡은 업체도 차씨 측근이 운영한 업체란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최순실(60ㆍ구속기소)씨의 태블릿PC에선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전신인 창조경제타운 홈페이지 구축 시안도 발견됐다. 소위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들이 창조경제 정책에 깊숙이 개입하며 국정을 농단한 정황들은 끊임없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창조경제 홍보 행사인 이번 박람회를 무기한 연기돼야 한다는 여론이 일찌감치 일었다.
그러나 미래부는 오히려 행사를 더 키워 박 대통령의 창조경제 홍보를 강행하겠다는 심산이다. 실제로 미래부는 올해 박람회 참가기업·기관과 부스 모두 지난해보다 각각 52%, 15%씩 늘어 역대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이번 박람회에 투입된 미래부 예산도 33억원으로, 지난해(18억원)의 2배 가까이로 늘렸다. 미래부는 전시관에 자리잡은 ‘상생협력존’에 현대중공업, 효성, LG, 포스코, SK, 삼성전자, 카카오, 한화 등 대기업들이 어김없이 참가한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내키지 않는 정부 행사에 사실상 강제로 동원된 기업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정부가 무리하게 ‘보여주기’식 자축성 행사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C기업 관계자는 “행사를 할 때마다 ‘누구를 데려오라’는 식의 무리한 요구를 해 익숙하긴 하지만 이 판국에 창조경제박람회까지 성대하게 준비하는 꼴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며 “참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지만 티도 못 내 구색만 맞추려 한다”고 말했다. D기업 관계자도 “불필요한 행사에 수십억원을 들일 게 아니라 이럴 때일수록 기업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예산을 아껴 써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지원 중인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미 곳곳에서 파열음이 들리고 있다. E기업 임원은 “지금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계속 운영해야 할 지 판단조차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경영 전략 수립을 마무리 해야 될 시점이지만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관련된 예산은 정하지 못했다.
미래부는 창업 생태계 형성이라는 정책 본연의 목적을 이행하려는 노력으로 봐달라는 입장이다. 고경모 미래부 창조경제조정관은 “행사 참여 기업들로부터 자발적 참여라는 의사를 재차 확인했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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