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열리는 촛불집회가 이번 주면 벌써 6주째로 접어든다. 이틀 쉬던 주말이 갑자기 하루로 줄어드는 바람에 피로감이 쌓이지만, 그래도 매주 광장의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이번 촛불집회는 시위라기보다는 온 국민의 축제에 가깝다. 어린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유모차를 끌고 참가한 젊은 부부도 많다. '전견(犬)련' '민주묘총' '범깡총연대'처럼 동물의 모습이 들어간 재기 넘치는 깃발도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집회에 참석할 때 마다 반려동물을 데리고 온 참가자들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주말 산책도 할 겸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도 있고, 드물긴 하지만 반려묘를 품에 안고 나온 사람도 보인다. 반려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를 대비해 이동장을 준비한 사람도 있었고, 혹은 더 적극적으로 '박근혜 아웃(out)', '하야하라'등의 구호가 적힌 종이나 천을 반려동물의 몸에 붙이고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반려동물을 대동한 사람들은 대부분 복잡한 광화문 광장보다 인파가 비교적 적은 주변 지역에 머무르는 것으로 보였지만, 간혹 동물을 무릎에 앉힌 채로 집회 내내 광장 바닥에 앉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반려동물 가족과 함께 축제 같은 집회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백만 명이 모이는 집회에 동물을 데려오는 것은 그 종(種)을 불문하고 바람직하지 않다. 개는 사람에 비하면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로 좋은 청력을 가졌다. 루이지애나주립대의 2003년 연구에 따르면 성인이 주파수 20~2만㎐까지 들을 수 있는데 비해 개는 67~4만5,000㎐까지 들을 수 있었다. 따라서 사람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는 정도의 소음도 개의 입장에서는 견디기 힘들 수 있다. 개가 진공청소기의 소음을 무서워하거나, 집 안에서는 그다지 크게 들리지 않는데도 천둥소리를 듣고 불안해하는 경우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려견이 천둥이나 폭죽 소리처럼 큰 소음을 들은 뒤 호흡이 빨라지면서 침을 흘리거나, 몸을 떨면서 구석에 숨는 행동, 배변ㆍ배뇨를 하는 행동, 왔다갔다하거나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행동을 보인다면 소음불안증상(Noise Anxiety)을 의심해야 한다. 이전에 증상을 보이지 않았던 동물이라 하더라도 갑자기 큰 소음에 노출돼 심리적인 충격을 받으면 불안증세가 생길 수 있고, 추후 같은 상황에서 재발될 가능성도 있다. 백만 명이 내지르는 함성과 구호를 외치는 소리, 스피커를 통해 크게 울리는 진행자의 목소리와 음악 등은 개가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크기의 소음이다.
개는 시끄러운 소음이 가득한 곳에서 탈출하려는 본능이 있다. 반려동물 가구의 비율이 높은 미국에서는 매년 7월 4일 독립기념일 전이면 동물보호단체에서 반려견의 안전에 주의할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이 날은 전국에서 크고 작은 규모의 불꽃놀이가 벌어지는데, 폭죽 소리에 놀라 야외에 있던 개들이 도망치거나 집을 탈출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단체는 불꽃놀이 행사에 동물을 데려가는 것을 삼가고, 마당에 있는 동물은 집 안으로 들여놓을 것을 권장한다.
고양이도 주위 환경의 변화와 스트레스에 아주 민감하다. 아무리 주인이 함께 있다고 해도 집회현장의 소음과 분위기를 위협적으로 느끼기 쉽고, 불안감을 느낀 고양이가 이동장 밖으로 뛰쳐나가거나 주인으로부터 도망치는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버려진 동물을 위한 수의사회'의 명보영 수의사는 "사람 많은 장소에 익숙하도록 사회화된 반려동물이라고 해도 백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집회 장소에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며, "심인적인 스트레스 자체가 면역을 억압해 신경계, 호흡기, 소화기 증상도 유발할 수 있다" 고 경고했다.
집회현장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동물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는 표현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물은 많은 사람들이 모인 대의명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려동물과 촛불운동에 동참하고 싶다면 반려동물과 함께 손피켓을 들고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방법도 있다.
동물도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더 효과적인 행동은 따로 있다. 올해 '강아지 공장'의 참혹한 모습이 보도된 후 수만 명의 서명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 번식장을 규제하는 내용 등이 담긴 동물보호법 개정안 14건 중 단 한 건도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반려동물을 집회에 데려오는 대신에, 잠깐의 시간을 들여 내가 사는 지역의 국회의원에게 이메일이나 SNS 등으로 동물보호법 통과를 촉구하는 의견을 전달해 보면 어떨까. 정부와 국회를 대상으로 동물보호정책 마련을 요구하는 동물보호단체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서명운동, 캠페인 등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형주 동물보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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