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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같이 사는 건 고슴도치끼리 껴안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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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구병 “같이 사는 건 고슴도치끼리 껴안는 거”

입력
2016.11.30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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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을, 자연을 믿고 맡기라는 것이 윤구병 선생이 귀향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천년의상상 제공
흙을, 자연을 믿고 맡기라는 것이 윤구병 선생이 귀향자들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천년의상상 제공

“간직만 해놓고 있었는데…. 자꾸 책을 내자고 해서. 그 안의 내용 때문에 마음 다치는 사람만 없었으면 좋겠어요.”

대학교수직을 내버리고 변산공동체를 만들어 정착한 철학자 윤구병(73) 선생이 변산공동체를 처음 만들었던 1996년에 쓴 일기를 ‘윤구병 일기 1996’(천년의상상)으로 묶어냈다. 한 해 쓴 일기를 고스란히 묶었으니 책 분량은 900쪽이 넘는다. 개인의 사감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일기를 빼놓지 않고 다 공개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귀농, 귀촌이 시대의 트렌드가 되어버린 지금 “관심 있는 사람들이 보면 그래도 한 두가지 건질만한 지침이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출간을 결심했다.

1995년 그 때만 해도 충북대 교수였던 윤 선생은 전북 부안에 변산공동체를 마련했다. 책에는 윤 선생이 공동체를 하게 된 계기도 털어놨다. 농사를 해보고는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던 시절, 그의 글을 읽은 전관유라는 학생이 “하게 되면 나를 제일 먼저 불러달라”며 찾아왔던 것. 심지어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논밭을 팔았으니 그 돈으로 땅을 사서 시작하자는 제안까지 했다. 그게 1994년이었다. 아차 싶었던 윤 선생은 곧바로 땅을 찾았다.

1995년엔 강의 뒤 수시로 내려갔다. 보리밥에 된장국에 풀을 뜯어 쌈 싸먹었다. 생전 처음 보는 풀이라 독이 있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5월 단오까진 염소가 먹는 풀은 사람이 먹어도 된다”는 말만 믿고 먹었다. 농사랍시고 해봐야 제대로 되는 게 없을 정도였다. 1996년은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이제야 정말 제대로 된 농사꾼이 되리라 결심하고 교수직도 그만두고 내려간 해다. “나도 마음만 있었지 아는 건 제대로 없었던 때라 어디서 방황하고 어떻게 실패했는지, 조그만 성공에도 얼마나 기뻐했는지가 다 담겨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월 12일자엔 국립대교수의 신분이다 보니 당시 김영삼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쓰는 내용이 나온다. 1월 20일엔 지리산 토종꿀과 ‘삽 한자루’를 선물로 내놓은 제자들과의 송별회도 있다. 3월 14일에는 변산공동체학교 구성 초안을 둘러싼 논의들이 정리되어 있다. “시골사람들은 신명이 나지 않아도 자연에 순응하여 해 뜨면 일어나 들에 나가고 해 지면 돌아와 자고, 씨앗 뿌릴 때는 뿌려야 하고 곡식 거둘 때는 때 맞춰 거두어들여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온 몸의 노동으로 익혀가는 과정이 일기에 찬찬히 다 녹아 있다.

새끼를 꼬고 있는 윤구병 선생. 농사일을 어느 정도 안다 생각했지만,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새끼를 꼬고 있는 윤구병 선생. 농사일을 어느 정도 안다 생각했지만,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했다. 천년의상상 제공

흔들리지 않은 것도 아니다. 5월 31일자를 보면 그날은 나무나 풀 종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해 하루 종일 식물도감, 약초도감을 뒤적이느라 녹초가 됐는데, 이날은 주변 사람들마저 “당신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며 윤 선생을 공격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오해도 받았다. 6월 27일에는 자신의 변산공동체와 학교를 ‘아나키즘’으로 규정한 언론사에 항의하는 편지도 들어 있다. 윤 선생은 이 글에서 자신의 공동체와 학교는 아나키즘이 아니라 “인류가 수만년을 두고 행해왔던 보편교육의 복원일 뿐”이라 항변했다.

윤 선생은 서문에 이리 썼다. “같이 산다는 게 뭔지 알아? 이게 고슴도치 같은 거야. 서로 껴안으면서 살자 하는 꿈을 꾸고 여기 들어왔는데, 도시에서 적응 못한 사람들이 시골에서는 적응을 할까? 서로 마음을 내면 될까? 그것도 잘 안돼. 결국 자연이 하는 거야. 자연이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다.”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 한 말씀을 부탁하자 윤 선생은 “도시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시골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는 사람과 곡식, 사람과 풀, 사람과 동물, 사람과 날씨, 사람과 비 간의 관계들 중 하나일 뿐”이라면서 “사람과 사람이 아니라 자연이 베풀어주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완규 천년의상상 편집자는 “처음엔 일기 중 몇몇 대목을 추려낼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감흥이 없을 것 같아 있는 그대로 다 내게 됐다”면서 “공동체다 보니 아무래도 일정하게 등장하는 인물들도 있어서 가만 읽다 보면 장편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재미도 있다”고 말했다. 윤 선생이 공동체 일을 해나가면서 일기를 꼬박꼬박 쓴 건 1996년부터 2001년까지다. 선 편집자는 “공동체가 어떻게 지역에 자리를 잡아 나가느냐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기 때문에 1,000쪽이 넘어가는 분량이 나오더라도,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스란히 다 책으로 묶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윤 선생은 “내가 저 세상으로 가고 난 다음에야 다 나오겠지”라며 웃었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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