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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밤바다에서 건진 무늬오징어, 그 담백 달달함이란

입력
2016.11.30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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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밤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늬오징어.
제주 밤바다에서 건져 올린 무늬오징어.

부드러운 바람, 잔잔한 물결. 밤의 바다로 향하는 걸음은 차분하고 여유롭다. 멀리 갈칫배 불빛이 강렬한 점으로 빼곡히 줄짓고 포말이 발 아래 거뭇한 바위를 어루만지며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

무늬오징어를 낚는 시간은 느긋하다. 정식명칭은 흰 꼴뚜기, 산북의 바다에서는 4,5월부터 11월초까지 볼 수 있다. 바람이 잦아든 밤에 새우모양의 가짜 미끼인 에기를 던진다. 충분히 가라앉을 때를 기다리다가, 줄을 서서히 감으며 대를 위로 두 세 번 휙휙 휘둘러 물 속의 에기가 도망가는 새우처럼 보이도록 만든다. 그리고 줄을 천천히 감으며 에기가 다시 가라앉도록 기다린다. 무늬오징어를 유혹하는 작업이다.

제주 밤바다.
제주 밤바다.

잠시의 기다림. 한나절 번잡했던 일상과 피로가 비워지는 순간이다. 비워진 찻잔을 살포시 내려놓듯 마음엔 정적이 흐른다.

낚싯대에 ‘턱!’하는 느낌이 전해지며 릴에서 ‘찌익~’소리가 난다. 무늬오징어가 에기를 잡고 끄는 것이다. 에기 끝의 바늘에 다리가 걸리면 녀석은 낚싯대의 낭창함과 릴 드랙의 여유에 제압당해 끌려 나온다. 바닥에 몸이 닿는 순간 녀석은 머금었던 먹물을 온 힘을 다해 쏟아낸다. 몸통의 반점들이 검은색, 갈색, 흰색 등 여러 색으로 울긋불긋해지며 화가 나 있음을 표현한다. 몸통 전체를 잇는 날개지느러미, 눈 주변의 청록색 초승달 문양, 짧고 굵은 다리, 방금 낚은 무늬오징어의 모습을 만족스레 감상한 다음 다시 에기를 던진다.

아내는 오징어를 좋아한다. 무늬오징어 낚시를 다녀오겠다고 했을 때, 다른 낚시를 말할 때와 달리 표정이 조금 부드럽다. 잡은 오징어는 회로 즐길 수도 있지만 아내와 나는 튀김을 더 선호한다. 포구에서 손질한 다음 비닐팩에 넣어 집 냉동실에 넣어둔다. 차가운 맥주로 반죽한 튀김옷을 입혀 뜨거운 기름에 잠깐 튀겨내면 담백 달달함에 손이 멈추질 않는다. 킬로가 넘는 것은 살짝 데쳐 익혀먹는다. 두꺼운 몸통의 겉은 익고 안쪽은 특유의 단맛을 간직한다. 탄탄한 식감과 단맛의 조화가 일품이다.

일터가 바뀌어 올해엔 무늬오징어 낚시를 자주 다니지 못했다. 늦여름이 되어서야 첫 낚시를 개시했다. 이제는 산북의 시즌이 끝나 무늬오징어를 보려면 서귀포 산남까지 가야 한다.

튀김옷을 기다리는 냉동실의 무늬오징어를 보며 나는 따뜻했던 밤 포구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멀리 보이는 도시의 불빛, 머리 위 비행기의 나직한 소음과 반짝임, 그리고 동료의 어두운 실루엣. 고요와 정적의 이미지만 있을 뿐이다. 아마 나는 무늬오징어 낚시를 하며 마음을 고요히 다스리고 있었나 보다.

전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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