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열음부터 조성진, 선우예권, 문지영까지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20, 30대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공통된 ‘루트’는 ‘금호영재콘서트 데뷔, 예술학교 입학, 국제 콩쿠르 입상’으로 요약된다. 10살 이전에 특출한 재능을 보이고 좋은 스승을 만나 콩쿠르를 통해 공연 기회를 따낸다. 장르를 피아노에서 바이올린으로 돌리면, 2014년 세계 3대 바이올린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인디애나폴리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콩쿠르 졸업’을 선언한 조진주(28)를 손열음에, 12번 출전 11번 입상에 빛나는 ‘콩쿠르 사냥꾼’ 김봄소리(27)를 7개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선우예권에 빗댈만하다.
조진주, 김봄소리가 각각 12월 1일과 4일 서울 광화문 금호아트홀,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독주회로 국내 팬들과 만난다. 둘 다 묘하게도 국내 잘 연주되지 않는 근현대음악가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조진주가 “트럼프 당선부터 최순실 게이트까지” 어지러운 정국을 을씨년스러운 선곡으로 드러낸다면 김봄소리는 최신 콩쿠르 시험곡들을 들려주며 관련 에피소드를 직접 무대에서 설명한다.
“벤자민 브리튼은 살면서 양차대전을 다 겪었어요. 복잡다단하면서도 냉소적인 감정이 작품에 묻어있죠.” 조진주는 29일 한국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이번 연주회는 슈베르트 ‘듀오’를 빼고는 전부 근현대 작곡가 작품”이라며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 서 있는 음악이 요즘 시국과 매우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1일 연주회에서 듀오를 비롯해 에르빈 슐호프 바이올린 소나타 2번, 외젠 이자이 바이올린 독주 소나타 4번, 벤자민 브리튼 바이올린 모음곡 등을 연주한다.
그는 “최근 활을 바꿔 연주법도 달라졌다”며 “콩쿠르 나갔던 시절에는 변화가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활력소가 됐다”고 말했다. “인디애나폴리스 우승할 때 기분이 꼭 신춘문예 당선된 기분 같았다고 할까요. 콩쿠르에서 좋은 성적 내려면 아무래도 튀는 해석을 자제하고 방어적으로 연주하게 되거든요. (우승 후)확실히 자유로워졌어요.”
조진주는 예원학교 재학 중 미국 커티스 음악원으로 유학, 클리블랜드 음악원을 졸업했고 올해 클리블랜드 겸임교수로 임용됐다. 6월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 데뷔했다. 손열음만큼이나 책 많이 읽고 글 잘 쓰는 연주자로 정평이 나 있다.
“다음 달 일정이요? 1일에 뉴욕 리사이틀을 시작해 서울, 원주, 벨기에 브뤼셀,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연주하고 다시 서울로 오죠.”
김봄소리의 스케줄은 여느 아이돌 스타 못지 않다. 12월에만 세계 각국을 누비며 연주회 12개를 소화한다. 김봄소리는 27일 전화인터뷰에서 “저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며 “콩쿠르 부상으로 연주 기회가 주어지며 해야 할 공연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2010년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를 시작으로 입상한 국제 콩쿠르만 11개. 올해만 앨리스 앤 엘레노어 쇤펠드 국제 현악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1위,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2위,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바이올린 콩쿠르 2위를 차지했다. “콩쿠르 별로 심사위원 취향이 달라요. 심사위원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래서 자기 음악에 대한 확신이 필요해요. 자신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준비가 됐다면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요. 어차피 누가 떨어져도 이상할 것 없는 시스템이에요.”
4일 연주회는 이런 경험을 나누는 자리다. 그동안 치른 콩쿠르 입상곡들을 실황으로 연주하고 콩쿠르 준비 과정을 나눈다. 지난해 퀸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비롯해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을 안겨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올해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선보인 이자이 바이올린 소나타 ‘발라드’ 등이다. 연주뿐 아니라 처음으로 마이크도 든다. 김봄소리는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콩쿠르를 준비하면서 고민한 것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팁들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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