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고장난 저울’에 무색해진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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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고장난 저울’에 무색해진 김영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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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30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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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순수한 지원” 주장에

시민 “청렴 말할 자격 있나”냉소

경찰에 접수된 신고 건수 급감

“스승의 날 캔커피도 조심스러운데 거악부터 뿌리 뽑아야”목소리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10월 28일 점심시간 서울 서초구 한 음식점에 손님이 없어 한산하다. 홍인기 기자

인천의 한 공립중학교 교사 서모(30ㆍ여)씨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청탁금지법)’ 최종 유권해석을 듣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스승의 날 담임교사가 카네이션 선물을 받거나 대학 교수가 학생으로부터 캔 커피를 받는 행위가 청탁금지법에 위배된다고 결론났기 때문이다. 서씨는 29일 “학생들이 주는 막대과자 하나도 모두 거절했는데 정작 기업들을 겁박해 수백억원을 뜯어낸 박근혜 대통령을 보고 이 정부가 과연 청렴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시행 두 달(28일)을 맞은 청탁금지법이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부패 척결과 신뢰 회복이란 취지로 도입됐으나 국민만 몸을 사릴 뿐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고위 공직자들의 전방위 ‘갑질’과 부정이 속속 드러나면서 청탁금지법을 계속 시행해야 하느냐는 냉소와 비판이 팽배하다.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처음 제안한 청탁금지법은 4년 여의 논의와 진통 끝에 올해 9월 28일 첫걸음을 뗐다. 법 도입을 놓고 경제 위축을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지만 투명사회를 위한 디딤돌로 찬성 여론이 훨씬 우세했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대통령 비선 실세와 최고위급 공직자들이 결탁한 정권 차원의 부정부패가 한국사회를 덮치면서 청탁금지법은 설 자리를 잃어가는 분위기다. 특히 그토록 청탁금지법 도입 필요성을 강조해 온 박 대통령이 앞장서 기업들로부터 700억원이 넘는 돈을 모금했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청탁금지법이 공포된 이후 대기업 총수들을 비밀리에 만나 미르ㆍK스포츠 재단에 기부금 등 지원을 요청했다. 법이 시행에 들어간 지난달에는 “청탁금지법은 투명 사회를 만들자는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재차 언급했지만, 이미 안종범(구속)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시켜 최씨 관련 업체가 수십억원어치의 대기업 일감을 수주하게 한 상태였다.

서울 일선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이모(26) 순경은 “도움을 받은 시민이 고맙다며 건네는 음료수 한 캔에도 깜짝 놀라 손사래 치기 일쑤인데 종합 비리 세트를 접하고 심한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회사원 안현수(34)씨는 "혹시 불필요한 오해를 살까 봐 공직에 있는 친구를 만나는 것도 피해왔지만 결국 대통령도 지키지 않을 법을 국민에게만 강요한 꼴"이라고 꼬집었다.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은 김영란법을 위반한 자질도 없는 저질 공무원으로 판명 났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청탁금지법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법에 구애 받지 않으려는 조짐도 일부 나타나고 있다. 28일 저녁 서울 북창동 A한식당은 밀려드는 손님들로 빈 자리를 찾아 보기 어려웠다. 식당 직원은 “청탁금지법 시행 후 한동안 손님이 뜸했지만 2,3주 전부터 1인당 5만원이 넘는 메뉴도 예약이 다시 몰리고 있다”고 귀띔했다. 정부서울청사 인근 B한정식집 사장 역시 “예년 대비 30%까지 떨어진 매출이 최근 들어 확실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달 27일까지 경찰에 접수된 2개월 차 법 위반 신고 건수(서면ㆍ112 신고 포함)는 첫 달 301건에서 41건으로 크게 줄었다. 회사원 권모(41)씨는 “박 대통령이 기업들의 ‘순수한 지원’이라고 했으니 우리도 걸리면 ‘청탁이 아니라 순수한 친목모임’이라고 대꾸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청탁금지법 도입 취지까지 훼손돼서는 안 되는 만큼 국민의 법 감정을 달랠 현실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행 청탁금지법은 3ㆍ5ㆍ10만원 등 서민의 일상을 옭아매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거악을 뿌리뽑을 수 있는 대책도 병행돼야 공감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도 “최순실 게이트를 교훈 삼아 공사 구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등 청탁금지법의 기본 정신과 기능을 되새기는 정책 홍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청탁금지/2016-11-29(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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