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촛불민심과 정치권의 퇴진 요구에 대해 박 대통령이 입장을 내놓은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의 책임을 지고 즉각 물러나는 것을 거부하고, ‘국회의 합의’라는 비현실적 조건을 달아 또 다시 시간 끌기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 기자회견장에서 발표한 3차 대국민담화에서 “여야 정치권이 논의해서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달라”고 제안하고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면서 “대한민국이 하루 속히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고 ‘순수한 의도’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질서 있는 퇴진’ 가능성을 열어 두면서, 당장 국회에서 탄핵돼 강제로 물러나는 최악의 치욕은 면할 공산이 커졌다. 대통령 탄핵에 동참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이 야당과의 ‘탄핵 연대’에서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비박계는 이날 회동에서 “여야가 박 대통령의 조기 퇴진 문제를 협상하는 게 먼저”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야당이 추진하는 12월 2일 국회 탄핵안 표결에 불참할 뜻을 밝혔다. 무소속을 포함한 야3당 의원(172명)만으로는 탄핵안 가결 정족수(200명)를 채울 수 없다.
여야가 내년 대선의 유불리를 따지느라 박 대통령의 퇴진 로드맵을 놓고 합의에 이를지도 미지수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이날 담화는 탄핵을 저지하고 최순실 정국 수습의 책임을 국회로 떠넘기는 ‘꼼수’라는 비판을 사고 있다.
박 대통령은 장기전을 치를 준비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르면 이번 주 중 기자회견을 열어 비선실세 최순실(60)씨의 국정농단 비리 의혹을 적극 해명하는 등, 최순실 특검과 국정조사를 앞두고 여론전에 나설 예정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담화에서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최씨 비리의 공범이라는 검찰의 주장은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은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다”면서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다”며 무고함을 거듭 주장했다.
새누리당은 마라톤 의원총회 끝에 박 대통령이 제안한 ‘질서 있는 퇴진’을 놓고 내달 9일까지 야당과 협상을 진행키로 하고, 협상 권한을 정진석 원내대표에 일임하기로 했다.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야권과 의견을 모아 정권 이양의 질서를 만들고 야권의 개헌 주장을 경청하고 힘을 보태자"며 탄핵 저지에 나섰다. 최경환 의원은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했으니 질서 있는 퇴진 방안을 국회에서 마련해 국정혼란을 최소화하자"고 했다. 비박계인 나경원 의원은 “여야가 합의에 실패하면 예정대로 9일에 탄핵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서상현 기자 lss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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