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결심공판
세퓨 전 대표 징역 10년 구형
“어설픈 용서는 비극이 반복되도록 합니다”
5년 전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가 15개월 된 아이를 잃은 엄마 김모(39)씨가 29일 재판장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키우며 만끽하던 ‘완벽한 삶’을 파괴한 가해자들을 엄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최창영) 심리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결심 공판에서다.
김씨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에 든 종이를 들고 외쳤다. “머리 속에 ‘성과’‘매출’‘수익’만 가득했던, 소비자 안전에 대한 ‘책임감’ ‘의무’따윈 애초에 생각지도 않은 저들에 대한 사법부의 준엄한 심판을 기다리며 착잡하게 버텼다”고.
피해자 가족 대표인 최승운씨는 선고 전 마지막 공판에서 영상 한 편을 틀게 해달라고 재판장에 요청했다. 동영상에서 어느 아빠는 먼저 간 아이가 잠든 곳에 포도 한 송이를 놓으며 말했다. “항상 내 가슴 속에 널 담고 있단다.” 수의를 입은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제조업체 책임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검사들은 가해자들을 단죄해야 할 이유를 20여분에 걸쳐 언급했다. 검찰은 “기존 법리를 답습할 게 아니다. 원치 않는 위험에 대비할 보호적 기능, 범죄에 대한 강력한 예방조치를 담아낼 형법 해석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은 “결함 있는 제품 제조로 막대한 이익을 얻다가 많은 생명이 희생됐다면, 경영진과 기업에 막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현우(68) 전 옥시 대표 등 관련자들에게 중형을 구했다.
검찰은 2000년 독성화학물질(PHMG)이 함유된 ‘옥시 가습기당번’을 제조하고 안전성 검증 없이 허위광고로 제품을 판매한 신 전 대표에 대해 “참사의 뿌리로, 기업 이윤을 위해 소비자의 안전을 희생시킨 경영진으로서 그 누구보다 단죄가 불가피하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신 전 대표에 이어 옥시를 이끈 존 리(48) 전 대표에게도 2005년 옥시 연구소장 조모(52)씨에게서 ‘아이에게도 안심’ 문구 등이 포함된 제품 라벨을 바꿔야 한다는 보고를 받고도 조치를 하지 않은 책임을 물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또 다른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세퓨의 오모(40) 전 대표에게도 징역 10년형을 구했다. 옥시 연구소장이던 조씨 등 관계자 5명에게는 각각 징역 5~15년 또는 금고 3년을 구형했다. 기업 옥시와 세퓨에 대해선 법정 상한선인 벌금 1억5,000만원을 각각 구형했다. 신 전 대표 등은 이날 “유족에게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입을 모았지만 대부분 막판까지 치열한 방어논리를 폈다. 선고 공판은 내년 1월 6일 열린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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