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의 결정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가겠다고 밝혀 조기 대선도 현실화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퇴진 절차 및 방식을 결정해달라”고 공을 넘겨 시기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임기 단축과 조기 대선 실시는 확정적인 상황이다. 여야는 어느 시기가 자당 후보의 당선에 유리한 지를 두고 저울질에 들어갔다.
조기 대선은 원론적으로 박 대통령 퇴진 시점부터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한다. 헌법 68조 2항은 ‘대통령이 궐위된 때 또는 대통령 당선자가 사망하거나 판결 기타의 사유로 그 자격을 상실한 때에는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거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별도 부칙을 통한 인위적 시기 조정 등의 예외조항은 없다. 헌법재판소 공보관 출신의 노희범 법무법인 우면 변호사는 “대통령이 공석인 위중한 상황을 두 달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게 헌법 정신”이라며 “정당 간 합의나 국민 여론 만으로 대선 날짜를 인위적으로 조정할 수 없다”고 헌법의 취지를 설명했다.
여권에선 유력한 조기 대선 시기로 내년 6월이 거론되고 있다. 지난 27일 전직 국회의장ㆍ정치 원로 등이 “내년 4월에는 박 대통령이 하야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다, 전날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이 ‘명예로운 퇴진’을 요구하며 사실상 이들의 주장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권의 바람은 ‘국회가 총리를 추천한 뒤 대선 등 정치 일정을 확정하자’는 전제가 성립돼야 실현 가능하다는 취약점이 있다. 현재 야권이 ‘박 대통령의 조건 없는 퇴진’을 주장하면서 탄핵안 처리에 전력하고 있어, 신속한 총리 지명이 어려울 수 있다.
야권 주도로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헌재의 판단을 받는 상황이 온다면 내년 3월과 5월 사이에 조기 대선이 치러질 가능성도 있다. 헌재가 국민적 여론의 압박을 받아 박한철 헌재 소장이 퇴임하는 1월 말 전에 탄핵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3월에 대선이 치러지며,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전후로 결정이 나온다면 5월에 선거가 실시된다. 헌재가 심리 권고 기한인 6개월을 모두 채운다면, 대선은 8,9월에 진행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 등 유력 대선주자들은 조기 대선 시점에 대해선 철저히 말을 아끼고 있다. 야권에 유리한 현 정치 상황에서 가장 먼저 조기 대선 시점을 언급할 경우, 유권자들에게 ‘욕심 많은 정치인’이라는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문 전 대표는 전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으로써는 헌법 절차를 지키는 것 이상으로는 조기 대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정재호 기자 next8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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