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식 교환 카드로 경영권 확보
인적분할 방식 지배구조 개편 땐
삼성전자 자사주 의결권 살아나
총수일가의 지분 40% 확보 가능
2. 최순실 게이트’ 등 변수 많아
李부회장, 국정조사 출석에 부담
‘독점규제 개정안’ 국회 통과 땐
자사주 의결권 살리기 봉쇄 우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 검토를 공식화한 것은 이재용 부회장 중심의 경영 승계 작업에 속도가 내겠다는 의미다. 삼성 그룹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안정적 경영권 확보를 위해선 지주회사 전환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이다. 이재용 시대를 위한 ‘새판짜기’가 시작된 셈이다. 삼성 관계자도 29일 “표면적으로는 최근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에서 제안한 지주회사 전환 요구에 대한 답변이지만 사실상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첫걸음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리엇이 함께 요구한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삼성물산의 합병안은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태다. 이상훈 삼성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도 이에 대해 “현재 검토할 계획이 없다”며 “삼성전자의 지주회사 전환 여부만 살피겠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이처럼 지주회사 전환의 길로 들어선 것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배경이다. 지난 6월말 기준 삼성전자의 주주 구성 중 외국인 비율은 50%에 이르는 데 반해 총수 일가 및 특수관계인(이건희 3.49%, 홍라희 0.76%, 이재용 0.59% 등)은 18%에 불과했다. 이 부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유지를 위해선 지분율을 높여야만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기업 가치가 높아지고 주가가 뛰면서 주식 매입을 통해 지배력을 높이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지분 1%(140만6,793주, 보통주 기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주당 167만7,000원(29일 종가 기준)을 적용하면 2조3,592억원이란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삼성전자가 인적분할 방식의 지주회사 체제를 통한 지배구조 개편에 나설 경우 셈법은 달라진다. 삼성전자 지주회사와 사업회사 간 주식 교환 등을 통해 이 부회장의 지분율을 손 쉽게 끌어 올릴 수 있다. 먼저 현재 의결권이 없는 삼성전자의 자사주(13.15%)가 인적분할 과정에서 법 규정에 따라 의결권이 살아난다. 주식 교환 카드도 지배력 상승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나눠질 때 총수 일가는 사업회사 지분을 지주회사 주식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지분 확보에 나설 수 있다. 증권가에선 이런 과정을 통해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분을 40% 안팎까지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풀어야 할 숙제도 많다. 최근‘최순실씨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 검찰로부터 3번이나 압수수색을 당한 삼성으로서는 부정적 여론이 부담이 될 수 있다. 당장 이 부회장은 다음 달 6일 국정조사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삼성 관계자도 “이번에 발표한 지주회사 검토 계획에서 세부 진행 사항이 빠져 있는 것도 최순실 게이트와 무관하다고 볼 순 없다”고 토로했다.
정치권 공세도 넘어야 할 산이다.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3일 자사주를 이용한 대기업 총수의 지배력 강화와 경영권 승계를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개정안에 따르면 대기업 집단 소속 회사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해 회사 분할에 나설 경우 반드시 자사주를 미리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이 경우 자사주의 의결권을 살려 지분을 늘리려는 시도는 원천봉쇄 당할 수도 있다.
인적분할 세부 계획까지 기대했던 시장의 예상을 충족시키지는 못했지만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먼저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검토하고 나섰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에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멍석을 깐 만큼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인적 분할에 착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보합세로, 삼성물산은 8.63% 폭락한 채 마감됐다. 허재경 기자 rick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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