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급급 현실 인식조차 못해”
“범죄 혐의 묵묵부답 국민 우롱”
온라인ㆍSNS선 탄핵 결의 촉구
시민ㆍ사회단체 즉각 퇴진 운동
정치권 탄핵 처리 결과 따라
광화문 촛불 여의도 향할 수도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3차 대국민담화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 이후 처음 퇴진 의사를 내비쳤지만 민심은 더욱 악화했다. “단 한순간도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다”거나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며 자신의 범죄 혐의는 외면한 채 국회에 공을 돌린 태도를 보고 시민들 사이에서 “아직도 현실 인식조차 안 된다”는 절망감이 퍼지고 있다.
세 번째 담화에서 진실한 사과와 즉각 퇴진을 기대한 시민들은 알맹이 없는 언급에 크게 실망하는 모습이었다. 대학생 전우철(27)씨는 “여전히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의 박 대통령의 화법은 1,2차 담화와 전혀 달라진 점이 없었다”며 “여론이 원해 쫓겨나주겠다는 책임 회피 발언을 듣고 있자니 인간적 연민마저 모두 사라졌다”고 말했다. 고교 2학년 김동혁(17)군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신분임에도 여전히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고 주장하는 박 대통령을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회사원 김소희(32)씨는 “그간 박 대통령 행보를 감안하면 그나마 자진 퇴진 의사를 밝힌 게 다행일 정도”라고 꼬집었다.
퇴진을 언급했으나 스스로 책임지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은 담화를 두고 ‘희대의 꼼수’라는 비판도 쇄도하고 있다. 직장인 김영수(45)씨는 “여당인 새누리당에서도 탄핵 의견이 많은 만큼 탄핵 정국은 무르익은 상태”라며 “탄핵 망신을 당하기 싫어 공을 국회로 넘기고 여야 공방을 지켜보며 시간을 끌겠다는 술수가 아니겠느냐”고 울분을 터뜨렸다. 고교 교사 이모(60)씨는 “국회가 정해주는 대로 따르겠다는 발언은 여야의 의견 일치가 안 되면 임기를 채우겠다는 말과 같다”며 “국회는 담화 내용에 신경 쓰지 말고 즉각 탄핵소추를 결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조사는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혐의 사실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담화 내용 역시 도마에 올랐다. 직장인 박철우(44)씨는 “지금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점은 박 대통령이 국정 농락 사건에 얼마나, 어떻게 개입했느냐는 것”이라며 “2차 담화 때 검찰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해놓고선 혐의가 드러나자 아예 언급을 쏙 빼놓는 식으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분개했다.
3차 담화 발표 직후 포털사이트 댓글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 여론은 조속한 탄핵 절차 개시 쪽으로 급속히 옮겨가는 분위기다. “국정조사, 특검, 탄핵 이거 다 엎어버리는 게 목적인 듯(트위터 @clever_al***)” “개헌 갖고 싸우란 이야긴데 그냥 현행 헌법대로 탄핵으로 가면 된다(@denyeveryth***)” “비박이 탄핵 뭉그적거리면 여의도 가서 촛불 들어야 할 듯(@tinimoo***)” 등 다양한 주장이 쏟아졌다.
시민ㆍ사회단체들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를 ‘시간 끌기’ 전략으로 규정하고 즉각 퇴진 운동을 한층 확산시켜 나갈 계획이다. 박근용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당장 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되는 것을 막고 여론의 관심을 정치권으로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즉각 퇴진을 바라는 촛불의 요구를 저버렸다는 점에서 수준 이하의 담화”라고 평가절하했다. 고계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도 “국회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국민에게 약속했던 검찰 조사를 거부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책임도 엿보이지 않는다”고 힐난했다.
보수성향 단체들 중에는 박 대통령이 처음 퇴진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은 평가할 만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국회 결정에 따르겠다고 한 만큼 적법한 절차를 통해 바람직한 해결 방식을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촛불 민심 여의도 향하나
3차 대국민담화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끼얹으면서 이르면 내달 2일 국회에서 진행될 탄핵 결의 여부에 따라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을 밝히던 촛불이 여의도를 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1,500여개 시민ㆍ사회단체가 모인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박 대통령의 3차 담화가 이후 서울 정동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은 박 대통령의 2선 후퇴나 질서 있는 퇴진이 아닌 즉각 퇴진을 촉구한다”며 “30일 총파업ㆍ시민 불복종의 날은 물론 다음달 3일 6차 촛불집회도 예정대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담화를 보고 시민들의 분노가 배가돼 평일 촛불집회 참여 인원도 더 늘어날 것”이라며 “6차 촛불집회에서 5차 집회에 버금가는 100만명 이상의 참여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촛불 민심은 국회 본회의 탄핵 표결에 민감하게 움직일 전망이다. 박 대통령이 “임기 단축을 포함한 퇴진 로드맵을 국회에 일임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여야가 내달 2일 탄핵 일정을 뒤집거나 탄핵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정치권을 압박하는 여론의 요구는 훨씬 커질 수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탄핵안 처리를 놓고 다수 국민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올 경우 촛불의 타깃은 국회가 될 것”이라며 “정치권의 입장에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고 말했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