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정도 주부, 학생 등 300여명 정도를 대상으로 시험해봤는데, 엄청나게 많은 납 활자의 바다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 직접 인쇄해볼 수 있으니까 아주 재미있어 했습니다.”
경기 파주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옆에 ‘출판도시 활판인쇄박물관’을 연 방현석 계간 아시아 주간은 29일 개관 기념 간담회에서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활자를 하나하나 조합하는 활판인쇄 방식으로 책을 제작하고 활자와 인쇄장비를 전시하는 이 박물관은 문학 계간지 ‘아시아’ 주간인 방현석 작가를 비롯한 문인과 출판ㆍ인쇄인들이 힘을 모은 결실이다.
방 주간은 책과 활자 문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옛 납 활자를 부활시켜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1969년 전주에 설립된 제일활자에서 납 활자를 넘겨 받았고, 1972년 대구에 설립된 봉진인쇄소에서 활자주조 장비와 활판인쇄장비 등을 받았다. 인쇄물을 접고 묶는 접지기, 페이지를 차례로 맞추는 정합기 등 제본에 필요한 장비들은 서울 충무로와 광주, 부산 등 전국을 뒤져 찾아냈고, 일부는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사들였다. 이 과정에 적잖은 사재도 들였다. 그는 “무한정 속도만 강조되는 세상에서 다소 더디더라도 소장가치가 있는 책을 소장가치에 걸맞게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 끝에 부족한 납활자를 채워넣는 방식으로 3,267만8,000여개의 납활자를 확보했다. 이 납활자 무게만도 17톤이다. 박물관은 필요한 납활자를 고르는 문선, 배치하는 식자 등 전 과정을 체험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방문객 수준별로 여러 개를 마련했다. 윤동주의 ‘서시’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상의 ‘오감도’ 등 우리 대표 시 15편과 이 시들의 영역본을 한데 모아 ‘시를 새기다’ 시집도 활판 인쇄 방식으로 직접 찍어냈다. 한정판 300권만 내놓는데 시중 판매가는 3만원이다.
방 주간은 “활자를 만들고 문선하는 등 전 과정을 거쳐 만들어내는 데 4명의 인력이 달라붙어 한 달 동안 만든 책이라 다 팔린다 해도 손해”라고 말했다. 연간 시집 2권, 소설 1권을 이런 방식으로 제작키로 했다. 박물관에 가면 직접 이 책을 만들어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문선, 식자 과정이 없으니 가격은 2만5,000원이다. 방 주간은 “박물관 체험을 통해 문자와 문장에 대한 감각을 되살려내는데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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