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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절제가 부족한 사회

입력
2016.11.2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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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일본의 음식문화는 절제가 키워드인 것 같다. 지난 9월 말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가 초청한 산업세미나에 참석하러 오랜만에 들른 일본에서 다시 한 번 느낀 감상이다. 음식량이 푸짐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외면한다고 생각하는 우리네 식당들에 비하면 일본의 식당들은 정말 깍쟁이 수준으로 음식을 내어놓는다. 그런데 이 절제된 1인분 음식을 먹고 나면 탈이 없다. 참으로 맛있게 실컷 먹고 난 뒤에 종종 속탈로 고생하게 하는 우리나라 식당과는 사뭇 다른 음식문화인 것이다.

푸짐한 것을 좋아하는 우리네 성정은 음식문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경제나 산업 면에서도 종종 그런 현상을 발견한다. 어떤 산업이 성공한다 싶으면 너도나도 하면서 수많은 신규 경쟁자들이 시장에 뛰어들게 되고 이들 경쟁자들을 따돌리려는 기존 기업들이 더 많이 투자하면서 ‘공급과잉’이라는 함정에 곧잘 빠지게 된다.

작게는 우리나라를 ‘치킨왕국’이라고 부르게 만든 치킨 산업의 과당경쟁이 가장 두드러진 예일 것이다. 크게 보면 세계적으로 수요가 감소하는 경기 흐름을 누구보다 앞서서 인지했으면서도 그렇게 줄고 있는 시장에서도 서로 더 많은 수주를 하려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경쟁을 벌여온 조선 빅3의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지만, 과거에도 업종전문화니 빅딜이니 하는 바람직하지 않은 정부 개입을 초래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툭하면 정부의 억제정책을 초래하다가 얼마 가지 않아 다시 부양정책을 요구하며 부동산경기를 널뛰게 만드는 건설업계의 행보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이런 산업들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어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되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도 이해당사자들의 절제되지 않은 주장들이 쏟아지면서 어떤 형태의 타협도 이끌어내기가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도 마뜩지 않다. 종국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길이 막혀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전면에서 자신들의 주장만 내세우는 이해당사자들의 잘못을 고스란히 책임지는 결과가 예견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맡은 일이 있을 정도로 기업들을 속박하는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에 서 있지만, 우리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 혹은 창업기업들의 작은 사업영역을 너무나 쉽게 침범하여 시장을 교란하는 데는 문제의식을 느낀다. 정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니 적합업종이니 하며 규제하려 나서기 전에 대기업들이 스스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절제하지 않고 넘치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넘칠 정도의 끼를 발휘하는 한국의 대중문화의 특성 때문에 일본의 심심한 대중문화를 이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렇게 넘치는 것이 좋은 경우는 상대방이 없는 극히 개인적인 성취를 중시하는 문화 분야에나 한정되는 일인 것 같다.

상대방이 있고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사회적 분야, 즉 정치ㆍ경제ㆍ사회 등의 분야에서 우리나라의 넘치는 문화는 종종 극단적인 주장들을 낳게 하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사회적 분야에서의 타협이 어렵게 되고 종종 끝장을 보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선명성을 내세우면서 횡행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절제는 자신만이 아니라 남의 사정을 읽으려는 배려심이 있어야만 나올 수 있다. 일본인들은 서로의 사정을 배려하는 데 적극적이다. 오죽하면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가장 금해야 할 행동으로 가르칠까. 이러한 서로에 대한 배려심이 극단적으로 발전하여, 일본인이 만든 어떤 공동체에도 외부세계의 사람들이 끼어들기가 어렵게 만드는 배타적인 특성을 가지는 것이 오히려 일본의 단점으로 지적될 정도다.

흔히 우리나라는 정(情)의 문화를 가졌다고 한다. 이런 정의 문화와 남에 대한 배려를 같은 계열로 취급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지금의 우리 사회는 자기의 주장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득세하여 서로를 정이 떨어지게 만드는 사회로 변하고 있지는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우리나라에도 절제의 미덕을 보여주는 지도자들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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