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현역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한 이병규(42)는 프로 무대에서 기억에 남는 은사로 가장 먼저 천보성(63) 전 한양대 감독을 꼽았다. 그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천 감독은 1996년 시즌 도중 감독대행을 시작으로 1997~1999년까지 3년 반 동안 LG의 지휘봉을 잡고 전성기를 이끈 주인공으로 1997년 신인 이병규와 만났다. 천 감독은 27일“대학교 때부터 워낙 잘 했던 선수여서 기대는 있었는데 스프링캠프에 데려가 치는 걸 보니 엄청나더라”고 20년 전 기억을 떠올렸다. 천 감독은 “그래서 신인이지만 바로 기회를 줬고, (이)병규가 놓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병규는 빈틈을 주지 않고 풀타임을 소화하며 첫 해 타율 3할5리에 151안타, 69타점으로 신인왕에 골든글러브까지 차지했다.
이병규는 적극적인 선수였다. 천 감독은 “한 마디로 감독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선수”라면서 “처음에 2번을 맡겼는데 ‘병규야 3번에 서 주면 좋겠다. 그래야 4번 타자한테도 찬스가 많이 생긴다’고 했더니 군말 없이 따랐다”면서 “부상을 당했을 때도, 컨디션이 안 좋을 때도, 코치나 트레이너가 출전을 말려도 (이)병규는 늘 경기에 나갔다. 그래서 (타율 관리가 되지 않아)아깝게 수위 타자 경쟁에서 밀려난 적도 몇 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인급 시절이었던 점을 감안해도 그 정도로 감독과 팀을 위하는 선수는 드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정도 실력과 열정을 갖췄으니 국내 최고타자가 됐고, 일본에도 갔다 온 것 아니겠나”라고 했다.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병규는 당찬 성격으로 오해도 받았지만 정이 많고 심성이 착한 선수였다. 이병규의 은퇴 소식에 천 감독은 “아쉬운 마음이야 크겠지만 그래도 잘 결정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병규 정도면 앞으로 더 좋은 일로 야구계에서 봉사하고 큰 일을 할 수 있다”며 제자의 앞날을 축복했다.
이병규를 끝으로 1990년대에 LG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현역으로 뛰는 선수는 LG에 남아 있지 않다. 1997년과 1998년, 2년 연속으로 LG를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았던 천 감독은 “그 때 LG는 정말 강했다. 그 선수들이 벌써 그렇게 됐다니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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