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11.29
소비에트 시절 지하 출판물을 ‘사미즈다트(Samizdat)’라 부른다. ‘자가 출판’이란 뜻의 저 말이 검열ㆍ통제 시대의 비(반)합법 출판물을 통칭하게 된 사연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스탈린 치하 1940년대부터 소비에트가 해체된 80년대 말까지 러시아ㆍ동구의 거의 모든 반정부 인권 자유운동의 바탕에는 다양한 사마즈다트가 있었다. 그 중 일부가 번역돼 유럽과 미국으로 전해졌고, 솔제니친 불가코프 하벨 등의 작품들이 그 창구를 통해 서방에 알려졌다.
사미즈다트의 제작ㆍ유통 시스템은 한때 유행했던 ‘행운의 편지’와 유사하다. 은밀히 타이핑 된 몇 부의 원본이 지인들에게 전달되면 그들이 각자 먹지를 대고 여러 부를 만들어 다시 지인에게 전달하는 방식. 반체제운동가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는 “(사미즈다트는) 나 스스로 쓰고 편집하고 검열하고 만들어 배포하며, 발각되면 내가 감옥에 가면 그만”인 출판물이라고 소개했다.
나탈리아 고르바네프스카야(Natalya Gorbanevskaya, 1936~2013)는 옛 소련 시인ㆍ번역가로 최장수 지하출판물 ‘Chronicle of Current Events’을 만들어 첫 편집장으로 일했다.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레닌그라드대를 나온 그는 1968년 소수의 지인들과 함께 소비에트의 인권 실상을 알리기 위해 저 작업을 시작했다. 그 해는 유엔 세계인권선언 채택 20주년이었다. 그는 직접 타이핑한 창간호(4월 30일자) 6부 초판(zero generation)을 만들었다. 표지에는 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지닌다. (…)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전하고 전달받을 자유를 포함한다”를 적었다.
소련 체코 침공(프라하의 봄)에 항의해 그 해 8월 25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시위를 벌인 8인 중 한 명이기도 했던 그는 11호를 만들던 69년 12월 24일 체포돼 정신병원에 강제 수감(정신분열증 판정)됐다가 72년 2월 풀려났고, 75년 프랑스로 사실상 망명했다. 그는 반소비에트 인권운동을 선도하며 여러 국제 인권상을 탔다. 조엔 바에즈의 76년 노래 ‘Natalia’의 나탈리아가 그였다. 그는 2005년 폴란드 국적을 획득했고, 2013년 11월 29일, 77세로 별세했다.
‘Chronicle of Current Events’는 82년 12월 31일 마지막 호까지 약 15년간 부정기적으로 발행됐고, 그 사이 관련자 753명이 기소돼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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