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주식형 펀드 수익률 3.87%↓
알고리즘은 0.89~1.55%↓ 선방
아직 폭락장 대처 경험 없고
동시매수ㆍ매도 땐 시장왜곡 우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지난 9일, 이른바 ‘트럼패닉’(Trumpanicㆍ트럼프+패닉)이 증시를 뒤덮으며 코스피, 코스닥 지수는 각각 2.26%, 3.92% 급락했다. 그 여파로 다음날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하루에만 2.17%나 뒷걸음질쳤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산운용서비스 로보어드바이저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내년 상반기 서비스 시작을 목표로 코스콤의 로보어드바이저 테스트베드(성능ㆍ효과 시험)에 참여 중인 35개 알고리즘의 지난 9일 수익률 하락폭은 0.2~0.6%에 그친 것이다.
빅데이터 분석에 기반한 AI가 브렉시트(Brexitㆍ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까지 예측하고, 투자에선 ‘인간’ 펀드매니저보다 높은 수익률을 거두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특히 요즘처럼 방향을 가늠하기 힘든 시장 상황에선 유력한 재테크 대안으로도 주목 받는 분위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가 상대적으로 준수한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 전후 국내외 금융시장이 급등락을 거듭했음에도 최근 한 달간 로보어드바이저의 펀드운용 실적은 양호한 편이다. 코스콤 테스트베드 중 해외 안전추구형 알고리즘의 한 달 평균 수익률(28일 기준)은 0.82%를 기록했다. 해외 위험중립형과 해외 적극투자형도 각각 0.65%, 0.52%를 나타냈다. 반면 국내 자산운용사에서 운용하는 해외주식형 펀드 수익률(25일 기준)은 1.16% 떨어졌다.
국내 펀드 상황도 마찬가지다. 이 기간 국내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3.87% 하락한 반면, 알고리즘의 수익률은 유형에 따라 0.89~1.55% 떨어지는데 그쳤다. 테스트베드에 참여한 알고리즘은 안정적 수익을 추구하는 안정추구형과 고위험ㆍ고수익을 좇는 적극투자형, 그리고 두 유형의 절충인 위험중립형 세 가지 유형으로 이뤄져 있다.
앞서 브렉시트 때도 로보어드바이저는 견고한 운용능력을 보여줬다. 전세계 주가가 폭락했던 지난 6월 24일 브렉시트 당일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디셈버앤컴퍼니와 쿼터백투자자문의 로보어드바이저 상품은 각각 1.15%, 0.97%의 수익률을 올렸다. 브렉시트가 결정되기 전 유럽 주식 비중을 낮추는 식으로 위기를 피해간 것이다. 최창규 NH투자증권 연구원 “로보어드바이저가 앞으로 확실한 상품군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잘 알려진대로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전문가(advisor)의 합성어다. 스마트폰 등을 통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 또 운용비로 지불하는 수수료(투자액의 1% 미만)가 기존 펀드매니저 수수료(1% 이상)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소액 투자가 가능해 투자 대중화의 새 시대를 열 것이란 기대가 높다.
국내에서는 지난 4월 처음으로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 공모펀드가 출시된 데 이어 현재까지 키움투자자산운용과 NH-아문디자산운용에서 8개의 공모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키움쿼터백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의 최근 1주일 수익률(0.32%ㆍ25일 기준)은 국내 주식형펀드 평균 수익률(-0.65%)보다 높다. NH-아문디자산운용의 ‘디셈버글로벌로보어드바이저증권자투자신탁’의 수익률(-0.27%)도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시장은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작년말 기준 국내 자산운용액 480조원 가운데 로보어드바이저 비중은 0.03%(1,440억원)에 불과했으나 2021년에는 약 2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주의할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찰나의 차익거래를 주로 하는 로보어드바이저가 많아질 경우, 시장 가격이 왜곡돼 로보어드바이저 수익률도 한계에 부딪칠 수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상당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수십개 알고리즘이 같은 시간에 동일한 매수 신호를 제시하면 시장 가격이 급변할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결코 유효하지 않은 투자방법”이라고 지적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등장한 로보어드바이저 기술이 폭락장에 대처한 경험이 없다는 점도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다. 이지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산시장 호황기에 출시된 만큼 아직 침체기를 경험하지 못했다”며 “향후 시장충격 대응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변태섭 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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