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2월 축구계는 ‘한국의 퍼거슨’이 탄생했다는 소식으로 떠들썩했다. 프로축구 전북 현대가 최강희(57) 감독과 2020년 말까지 5년 장기 계약을 했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2005년 7월 전북 사령탑에 부임한 최 감독은 계약기간을 채울 경우 한 팀을 무려 15년 5개월 간 지휘하게 된다. 그가 중간에 국가대표 감독으로 잠시 (2012년 1월~13년 6월) 자리를 비운 기간을 빼도 14년이다. 국내 프로축구는 물론 프로스포츠 전체를 아울러도 보기 드문 사례다. 최 감독은 ‘전북 왕조’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 같은 장기 계약에 성공했다.
당시 그는 전북을 정규리그 4번 우승(09, 11, 14~15),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2011)으로 이끌며 ‘지방의 이류 구단’에서 ‘전국구 리딩 구단’으로 탈바꿈시켰다. 숙원 사업이던 클럽하우스 완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지역 팬들과 격의 없이 소통해 ‘봉동 이장’이란 별명을 얻었다. 화끈한 축구로 ‘닥공(닥치고 공격)’이란 브랜드를 탄생시키며 팬들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장수 감독’ 하면 일반적으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26년 간 이끈 알렉스 퍼거슨(75) 감독을 떠올리는데 최 감독에게도 ‘한국의 퍼거슨’이라는 수식어가 결코 과하지 않다는 평가다.
올 시즌에도 전북은 빛나는 업적을 이어갔다. 비록 정규리그 준우승에 그쳐 아쉽게 3연패는 실패했지만 2006년에 이어 10년 만에 아시아를 정복했다. 평균 관중도 1만6,785명으로 FC서울(1만8,007명)에 이어 2위를 차지해 전북은 명실상부 ‘축구도시’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모든 걸 일궈낸 최 감독이 정작 전북을 떠날 거라는 말이 심심찮게 떠돈다.
지난 4월 터진 구단 스카우터의 심판 매수 사건이 원인이다. 이 일 직후 지난 5월 최 감독과 이철근 전북 단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지난 9월 말 스카우터의 유죄가 확정되자 최 감독은 “때가 되면 입장을 표명 하겠다”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시즌이 끝났으니 이번 사태에 책임진다는 자세로 지휘봉을 내려놓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실제 최 감독은 사석에서 측근들에게 “전북을 우승시키고 아름답게 물러나겠다”는 뜻도 몇 차례 피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슈퍼리그(1부) 클럽들이 최 감독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전북을 떠나 중국에서 제2의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지 않겠느냐고 추측하기도 한다.
물론 최 감독이 계약기간을 채우거나 2020년 이후까지 ‘롱런’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프런트의 수장인 이철근 단장이 물러나고 최 감독은 팀을 맡는 방식으로 충격파를 흡수하고 구단의 철학은 계속 유지시키는 밑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만약 최 감독이 팀을 떠나기로 한다면 전북 팬들은 거세게 반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팬심’이 최 감독의 결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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