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6.25 불법 남침’ 명시
핵ㆍ인권문제 등 상세히 서술해
남한 정부 정통성 상대적 강조
친일파 대신 ‘친일세력’ 용어 사용
새마을운동 등 유신시대 성과 부각
독재 대신 ‘권위주의 체제’ 표현
동북공정 대항 고대사 서술 확대
위안부ㆍ독도 기술도 늘려 눈길
우려대로였다. 28일 공개된 역사 국정교과서는 ‘균형 서술’을 내세워 친일ㆍ독재를 희석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체제 비판을 강화해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다만 일본군 위안부와 독도ㆍ동해, 고구려 등과 관련한 우리 입장의 기술을 확대, 동북아 역사전쟁 참전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성과 부풀려 친일ㆍ독재 희석
교육부는 국정교과서도 검정교과서와 마찬가지로 친일 부역자 명단 및 친일 부역행위를 상세히 서술했다고 밝혔다. ‘전시체제 하 친일 반민족행위’라는 소주제 내용이 그렇다. 그러나 ‘친일의 길을 걸은 변절자들’이란 주제로 한 페이지를 할애해 상세히 다룬 일부 검정교과서보다 비중이 줄었다. 이승만 정부 반민특위 활동의 한계에 대한 서술도 검정교과서보다 설명이 부실하다. 고교 한국사에 친일파 대신 등장한 ‘친일세력’이란 용어도 부정적 어감을 줄이려는 의도라는 게 역사학계의 지적이다.
다양한 항일 독립운동 역사를 종합적으로 서술한다는 명분은 사회주의계열 독립운동 관련 서술이 네 문장 정도로 축소되는 결과를 불렀다. ‘다양한 사상의 수용과 민족 운동의 분화’라는 주제로 3ㆍ1운동을 거치며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로 나뉜 독립운동 세력들의 특징을 비교해보도록 했던 검정교과서에 비하면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격상한 것도 “친일 잔재를 포함하는 기득권세력의 역사관이 투영된 편파적 기술”이라는 게 광복회의 입장이다.
독재정권 역사는 성과를 부풀리고 과오는 축소하거나 회피하는 방향이었다. ‘반공 체제와 이승만의 장기 집권’ 꼭지에서 평가는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는 말미의 언급이 전부다. 유신체제 서술도 이와 비슷하다. 평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뿐이다.
반면 ‘새마을운동의 전개’ 꼭지에서는 새마을운동의 긍정적인 측면을 소개한 뒤 부정적 측면에 대해서는 “유신체제 유지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고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쳤다.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경제성장 중심의 역사 서술을 통해 성장의 성과만을 일면적으로 찬양하고 성장 주체로 정부ㆍ재벌을 강조, 박정희 시대를 미화하는가 하면 독재라는 쉬운 단어 대신 ‘권위주의 정치체제’라는 어려운 표현을 사용해 박정희 정권의 반(反)민주성에 물타기를 시도했다”고 꼬집었다.
반북(反北)으로 남한 정통성 강조
국정교과서는 남한 정통성에 대한 집착도 드러냈다. 1948년 8월 15일 수립된 대한민국이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 자유 선거에 의해 수립된 국가”라고 서술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운 대한민국은 주권도, 국민도, 영토도 없기 때문에 국가가 아니라는 뉴라이트 주장의 답습”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6ㆍ25전쟁이 북한의 불법 남침임을 분명히 하고,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나 핵 개발, 군사도발, 인권 문제 등을 5개 주제로 나눠, 현행 교과서보다 배 이상인 4페이지 분량으로 상세히 서술한 목적도 정통성 강조와 무관치 않다.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 도발에 대응하고 경계해야 하는 건 맞지만 통일이 민족적 과제임을 생각한다면 북한에 대한 증오만을 교과서에 기록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위안부ㆍ독도ㆍ고대사 서술 확대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대응 서술 강화는 그나마 주목할 만하다.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이 대폭 늘었다. 특히 고교 한국사에선 대부분의 검정교과서가 다루지 않았던 고노 일본 관방장관 담화(1993년)와 무라야마 총리 담화(1995년) 등을 수록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도 소개했다.
독도 문제를 상세히 기술한 건 일본이 지난해 중학교 교과서 검정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기존 검정교과서에 대부분 서술되지 않았던 ‘동해’ 표기의 역사적 연원을 제시해 정당성을 강조하고, 국제사회에서 동해 표기를 확산시키기 위해 기울인 정부의 노력도 교과서에 실었다. 아울러 고조선ㆍ고구려 등에 대한 고대사 서술을 확대해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섰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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