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삼성그룹의 경영 일정도 마비시키고 있다.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이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대비에 집중하면서 지배구조 개편과 정기 인사 등 계획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제안에 대해 “중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방안을 29일 컨퍼런스 콜을 통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앞서 엘리엇은 지난달 초 삼성전자를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인적 분할한 뒤 홀딩스는 삼성물산과 합병해 지주회사로 만들고, 사업회사는 한국거래소와 나스닥에 공동 상장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었다. 삼성전자 지분 0.62%를 보유하고 있는 엘리엇은 또 30조원의 특별배당 또는 1주당 24만5,0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할 것, 독립적인 3명의 사외이사를 선임할 것 등 주주친화정책의 시행도 요청했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는 29일 이사회를 열어 배당 강화 등의 방안을 정리해 밝힐 예정이지만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한 구체적인 인적분할 추진안은 내놓기 힘들다는 게 안팎의 전망이다. 최근 삼성 미래전략실이 잇따라 압수수색을 받은 데 이어 다음달 6일 이재용 부회장의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 참석이 예정돼 있고 특검도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엘리엇의 핵심 요구 사항인 삼성전자 분할과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은 삼성도 꾸준히 검토해 온 시나리오다. 오너 일가가 지주회사의 경영권만 확보해도 계열사 전체를 안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엘리엇의 제안을 일부 수용하는 형태로 지배구조 개편을 공식화하고 구체적인 방식과 일정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조기 추진은 쉽지 않아졌다.
삼성 관계자는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만큼 지배구조 개편 등을 공론화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 내부적 판단”이라며 “29일 이사회에선 큰 틀에서 방향성만 확인하고 추후 세부 계획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삼성그룹 정기 인사도 다음달 중순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통상 삼성그룹 사장단ㆍ임원 인사는 12월 초 단행됐었다. 지난해에는 12월 1일 각 계열사 사장단 인사가 있었고, 사흘 뒤인 4일 임원 인사가 이뤄졌다. 삼성 관계자는 “임원 승진의 경우 미래전략실이 승진 규모를 정하면 이에 맞춰 각 계열사가 승진 대상자를 추려 올리고, 미래전략실에서 검토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런 구조를 감안하면 미래전략실 업무가 올스톱된 상황에서 다음주 인사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삼성이 정기 인사를 연기하는 것은 2008년 비자금 특검 이후 처음이다. 당시 삼성은 정기 인사를 약 4개월 늦췄고, 전략기획실을 없애는 등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재계 관계자는 “정기 인사 후 새해 경영 전략 수립을 마무리 짓고 1월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관행인데 인사 시기조차 잡히지 않아 뒤숭숭한 분위기”라며 “내년도 사업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