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DJ DOC '촛불공연' 무산 정말 최선인가요?

입력
2016.11.28 19:14
0 0
그룹 DJ DOC가 최근 공개한 시국 풍자곡 '수취인분명' 뮤직비디오 한 장면.
그룹 DJ DOC가 최근 공개한 시국 풍자곡 '수취인분명' 뮤직비디오 한 장면.

그룹 DJ DOC가 ‘최순실 게이트’ 관련 시국 풍자곡인 ‘수취인분명’(미스박)을 발표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25일 DJ DOC 소속사에 가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어떻게 비판하고, 또 그 수위는 어느 정도일까가 궁금했다. 가사를 받아 보고 눈에 밟힌 건 딱 한 대목이었다. ‘나이 값 조또 못하는 어버이연합’이라는 문구였다. 손석희 JTBC 사장도 고발한 보수 시민단체라, 이 노래가 공개되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작 불똥은 생각하지도 못한 곳으로 튀었다. 일부 여성단체가 가사의 여성 비하적 표현을 조목조목 문제 삼고 나섰다. 특히 ‘미스(Miss) 박’이 논란의 용광로가 됐다. 한국에서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의 여성을 부를 때 썼던 호칭으로 대통령이 아닌 여성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미스’란 말은 이제 ‘죽은 말’이 됐다. 사람들이 더 이상 성 앞에 ‘미스’란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건 그 단어가 지닌 차별성과 비하적 의미를 사회 공동체가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민감한 단어를 끄집어 내 구설을 만든 건 분명 DJ DOC의 잘못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수취인분명’이 여성 혐오 곡으로 낙인 찍히고 ‘퇴출’되는 과정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 숲은 보지 않고 나무에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여서다. 맥락을 보자. DJ DOC의 노래는 곡 제목처럼 수취인이 분명하다. DJ DOC는 “박 유(U) 노답”이라며 랩을 시작한다. 비판의 대상을 불특정 여성이 아닌 박 대통령으로 명시했다. ‘순시리의 꼭두각시’ ‘한 국가의 원수에서 국민들의 원수’라고 박 대통령의 국기 문란을 꼬집은 뒤 ‘정말 궁금한 건 당신의 7시간’이라며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박 대통령의 실정을 가열차게 비판한다.

DJ DOC의 노래는 래퍼 산이가 최근 발표해 여성 비하 논란의 중심에 선 ‘나쁜X’과는 달리 봐야 한다. 산이가 한 남성이 여성에게 뒤통수를 맞은 설정을 박 대통령의 실정에 빗대 여성 비하 논란을 자처했다면, DJ DOC는 박 대통령의 혐의에 풍자를 집중한다. ‘여자 박근혜’가 아닌 ‘대통령 박근혜’를 저격한 의도가 곡에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뜻이다.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을 성형 수술에 의존하는 여성을 비하했다고 몰아 붙이는 것도 지나치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성형 시술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게 현실이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DJ DOC가 표현에 고민한 흔적도 보인다. DJ DOC는 “잘가요 미스 박”이라고 노래하지만, 뮤직비디오 안에는 ‘잘가요 미스(테이크)박’이라고 자막을 넣었다. 실수란 뜻의 미스테이크(mistake)란 의미를 살려 박 대통령의 실정을 꼬집은 것이란 해석도 무리는 아니다.

더 납득하기 어려웠던 건 DJ DOC의 촛불집회 퇴출 과정이었다. ‘수취인분명’의 여성 비하 논란으로 DJ DOC는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촛불집회 문화 공연에 참여하지 못했다. 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비상국민행동’)이 DJ DOC에 ‘공연 불가’를 통보해서다. 여러 여성단체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곡의 여성 비하적 표현을 문제 삼았다는 게 이유다. 28일 촛불 집회 문화 공연을 기획한 관계자에 따르면 DJ DOC는 논란을 고려해 ‘수취인분명’을 빼고 다른 곡으로 무대에 설 의사까지 내비쳤는데 무산됐다. DJ DOC가 무대에 설 기회 조차 얻지 못한 것이다. DJ DOC는 졸지에 ‘여성 혐오 그룹’이 됐다. ‘수취인분명’이 일부 여성들에 불편함을 줄 수 있는 곡일 수 있다. 그렇다고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는데, 곡을 넘어 그룹까지 내쫓는 건 ‘마녀사냥’이자 또 다른 ‘폭력’이다. 지난 5월 홍익대 정문 인근에 설치됐다 누군가의 ‘보기 싫다’는 이유로 박살이 난 ‘일간베스트(일베)’ 상징 조형물 사건과 다른 게 무엇인가. ‘미스 박’이란 단어가 논란이 된다고 판단했다면, 가사 수정 등의 논의 과정을 거친 뒤 받아들여지지 않은 경우 무대를 취소해도 되는 일이다. ‘비상국민행동’의 박진 공동상황실장은 “가사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논의한 후 최종적으로 취소하게 됐다”고만 하고, DJ DOC의 공연 무산 과정 등에 대한 얘기는 함구했다.

‘미스 박’이란 표현을 여과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수취인분명’은 박 대통령의 실정을 노골적으로 꼬집은 통쾌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음악적 은유도 깔려 듣는 재미도 쏠쏠하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곡 도입 부분에 KBS ‘토요명화’에 쓰이는 장엄한 멜로디가 흐른다. DJ DOC측에 따르면 이하늘이 현실이 워낙 영화 같다며 곡에 삽입했다. 촛불집회에 “빠바밤~”을 외치며 영화 같은 부조리한 현실을 비웃는 ‘100만 함성’을 듣고 싶다.

comeo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