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 등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사태로 한국 사회가 경제성장 둔화, 보호무역 부상, 지정학적 긴장에 정치 위기까지 더해진 이른바 ‘복합 위기(compounded crisis)’상황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자에서 “4년전 재벌개혁을 외치며 대선에서 낙승을 거둔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마비시킨 대형 스캔들의 중심에 섰다”며 탄핵 정국으로 접어든 한국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전했다. 신문은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스타트업 창업 부흥과 재벌개혁을 통해 경제 구조를 개선하겠다고 공약했지만 대부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매 분기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으며, 가계부채도 풍선처럼 불어나 지난 9월 1,300조원을 돌파했다는 것이다.
이번 스캔들로 국가 브랜드 경쟁력이 손상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한진해운은 지난 8월 이후 파산 수순을 밟으며 세계적 물류 대란을 초래했고, 이어 삼성전자 갤럭시 노트7 발화사태까지 불거져 국가 이미지에 타격을 줬다. 하지만 NH 투자증권의 피터 리 연구원은 “적어도 삼성은 사후 대응을 적절하게 했다”면서 “현재의 정치 스캔들이야말로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킬 것이다”고 내다봤다.
한국의 최대 교역국인 미국과 중국의 보호무역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중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사실상 ‘한류 금지령(限韓令ㆍ한한령)’을 내려 문화산업 수출에 제동을 걸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한-미 FTA 재협상과 주한미군 철수를 시사해 한반도 안보 위기와 경제 불안을 동시에 고조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위기를 타개할 리더십이 실종됐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레임덕에 빠진 대통령과 탄핵에 몰두한 국회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제때 내리지 못할 것이라 우려한다. 한스 샤틀 연세대학교 교수는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정통성을 잃은 다음에는 리더십 공백 상태에 따른 불안이 대외이슈로 파급될 것”이라고 FT에 밝혔다.
한편, FT는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위기 상황을 성장의 계기로 보는 낙관론도 소개했다. 1998년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이 기존 경영방식을 재고하고 부채 의존도를 낮추었듯, 이번 사태도 한국이 보다 건강한 민주주의와 좋은 리더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한국은 회복력이 좋은 나라”라며 “국민이 지금처럼 힘과 영향력을 보여준다면, 정치권은 스스로 정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유빈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