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아침을 열며] 닉슨과 박근혜

입력
2016.11.28 14:17
0 0

국가 최고 지도자는 한 국가를 그저 통치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한 국가의 얼굴이요, 상징이다. 그래서 좋은 지도자는 국가를 빛나게 하고 나쁜 지도자는 국가를 나락으로 떨어지게 한다. 지도자의 능력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도덕성은 기본이다. 도덕적이지 못한다면 국민들이 신뢰할 이유도 사라진다. 40여년 전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신뢰를 잃었고 결국 사임에 이른다. 리처드 닉슨이 누구인가. 잡초 같은 인생역정을 거쳐 미국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미국 동부 지역의 명문 듀크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닉슨은 어려서부터 폭넓은 독서 지식과 탁월한 토론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정계에 입문한 닉슨은 얼마 되지 않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쟁 영웅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정부의 부통령이 되는 기회를 잡는다. 1960년 대통령선거에서 존 F. 케네디 민주당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1968년 제 37대 미국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러나 재선까지 성공한 그의 앞에 놓인 위기는 다름 아닌 ‘워터게이트’였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은 닉슨 전 대통령 측근의 민주당 선거캠프 도청이었고 이 사태를 은폐하기 위해 CIA(미중앙정보국)를 동원한 대통령의 직권남용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닉슨 전 대통령은 철저하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급기야 탄핵 과정에 임박해서는 법무장관을 교체해 의회 특검을 훼방 놓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전 대통령은 부도덕한 인물로 낙인 찍혔고 수사과정의 증거 인멸과 방해로 무책임한 대통령으로 내몰렸다. 사건 그 자체보다 대통령의 수습 태도에 국민들의 분노는 더 커져갔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자 더 물러설 곳이 없어진 닉슨은 1974년 8월 8일 퇴임 연설을 하고 백악관을 떠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와 담화를 통해 진정성 있게 국민들에게 진상을 밝힐 것과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응할 것임을 약속했다. 검찰은 중간 수사 발표에 앞서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과의 약속은 변론 준비를 더 해야 한다는 궁색한 대통령 변호인의 변명으로 깨져 버렸다. 청와대의 수사 수용 불가 반응이 나온 이후 검찰의 중간 수사 발표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연설문의 유출부터 최순실과 관련된 기업에 대한 대통령의 청탁 비리 의혹까지 국정 농단의 민낯은 국민들의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부정부패와 각종 사회 비리 척결을 내걸었던 정권의 성격이 무색해진다.

사실로 밝혀진 의혹의 일부만 쫓더라도 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참담하리만큼 부도덕한 모습이다. 비선실세 국정농단 상황 자체도 어처구니없지만 이어 나온 대통령의 대응은 무책임하기 그지없다. 검찰 공소장에서 공모관계가 적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변호인은 국가 기관인 검찰 발표를 비아냥거리며 발뺌을 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철썩 같이 믿고 그의 딸인 박 대통령을 선택한 콘크리트 지지층은 이미 무너졌다. 숨은 박근혜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숨어 있을 명분조차 보수층엔 남아있지 않다.

국민들의 촛불은 청와대에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정치학자 에리카 체노웨스의 ‘3.5%의 법칙’처럼 우리 인구의 3.5%이상인 180만여명의 촛불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야 해결이 될까. 닉슨 전 대통령은 24% 지지율에 대통령직에서 내려왔다. 박 대통령은 지지율이 5% 아래로 내려왔지만 미동조차 없다. 닉슨은 그의 롤모델이자 정치적 아버지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명예를 위해 결단을 내린다고 말했다. 떠나는 닉슨의 모습은 초라했지만 마지막 결단을 내린 그에게 비난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얼마나 더 무너져야 박 대통령이 결단을 내릴까.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