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개월 간 낯선 여행지를 떠돌며 8인실 도미토리를 전전한 결과 한 가지를 깨달았다. 세상에나, 서양 여행자들은 밥 먹을 때를 빼면 맨날 잠만 잔다는 팬더처럼 참 많이 잔다! 오후 3시에나 일어나 밤새 클럽을 들락날락하는 ‘파티 애니멀’은 물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와 아침부터 일하는 여행자들까지 하나같이 하루 8시간 이상씩 꼬박꼬박 잔다. 쟤들이 여행을 왔나, 자러 왔나, 모를 만큼 많이 자고 많이 쉰다. 한식을 챙겨준다는 말에 홀려 며칠 머물던 한인민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나는 새벽부터 관광에 나선 한국인들이 빠져나간 방에서 덩그러니 홀로 깼는데, 사실 다른 곳에서는 제일 일찍 일어나 설치는 사람이었다. 그제서야 스페인의 한 한식당 사장님 말씀이 이해됐다. 로컬 식당은 물론 자라(Zara), 에이치앤엠(H&M) 같은 다국적 매장도 매주 일요일마다 문을 닫는 그곳에서 “도대체 스페인 사람들은 쇼핑도 안 하고 휴일에 뭐하나요?”라고 물었었다. 스페인에 산 지 10년쯤 됐다는 그는 “자요, 자. 집에서 푹 쉬어요”라고 했는데, 그때는 싱거운 농담이라고만 여겼다.
남들 자는 이야기를 늘어지게 쓴 까닭은 우리가 너무 적게 자고 너무 짧게 쉬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50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짧다. 그럼에도 통계청의 수면시간 결과가 공개되자마자 이렇게 오래 자는 복 터진 인간은 주변에 한 명도 없다는 분노의 반응이 쏟아졌다. 같은 기간 한국갤럽은 한국인의 실제 수면시간이 6시간 53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적절한 수면시간은 8.2시간인데 주간 노동자는 약 1.3시간 잠이 부족해 만성적이고 일상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그러게나, 우리는 사당오락의 무시무시한 협박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살아남지 않았던가. 대한민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163시간으로 멕시코를 제외하면 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또한 온라인 여행업체 ‘익스피디아’는 전세계 주요 국가 28개국 중 대한민국 직장인 휴가 사용일수가 6년 연속 전세계 꼴찌라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 시민들은 연평균 20일의 휴가를 쓰는 반면 한국인은 그 절반도 안 되는 8일을 휴가로 보낸다. 내가 이 글을 쓰는 호주의 공립도서관은 평일에는 오후 8시, 주말에는 5시에 문을 닫는데, 한국이라면 이제 공부 시작하는데 뭔 짓이냐고 했을 거다.
몇 년 전 24시간 영업하는 대형마트의 운영시간을 제한하자는 캠페인을 했을 때 사람들이 이렇게 물었었다. “일 끝나면 밤 10시인데 언제 장을 보나요?” 당시 우리의 슬로건은 서글프게도 “밤에는 자자”였다. 그러나 사회 전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남’이 가사노동을 나누지 않는 한 우리는 충분히 잘 수 없다. 밤에 잘 자야 각종 체내 분비선과 기관의 활동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이 분비되어 면역력이 강화되고 암과 노인성 치매를 예방하는데 말이다.
뭐 하루 이틀 일도 아니지만 바쁜 한국인들이 근 한 달여 주말을 반납하고 촛불집회까지 나가는 것이 장하고 짠해서, 복기한다. 온라인에는 주말에 애도 봐야 하고 난장판인 집도 치워야 하고 밀린 일도 있고 심지어 김장용 배추마저 쌓여있는데, 집회에 갔다 왔다는 고백이 넘친다. 촛불이야 금방 꺼지고 말 거라는 막돼먹은 소리에 맞서 사람들은 잠 잘 시간, 생존을 위한 휴식의 시간,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시간들을 쪼개고 쪼개 거리에 나선다. 배우 유아인이나 가수 양희은을 보거나 백만명이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주말에는 좀 쉬고 좀 자고 싶었을 테다. 그러니 박근혜 대통령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시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다. 김장철이 끝나기 전에 하야를 하시라. 안 그럼 비아그라라도 챙겨먹고서 집회에 나가고 말 테니.
고금숙 여성환경연대 환경건강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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