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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몸살...위협받는 플라밍고 성지

입력
2016.11.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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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사는 곳, 콜롬비아 팔로미노

에서 이어집니다

가까이 다가가다가 멈추니, 제자리로 돌아오는 플라밍고. N극과 S극이 만나듯 철컥 착지했다.
가까이 다가가다가 멈추니, 제자리로 돌아오는 플라밍고. N극과 S극이 만나듯 철컥 착지했다.
콜롬비아 ‘플라밍고 성지’ 위치
콜롬비아 ‘플라밍고 성지’ 위치

콜롬비아 팔로미노를 관통하는 90번 도로에 섰다. 정류장 표식 없는 큰길에서 무작정 카마로네스(Camarones)행 버스를 기다리는 참이었다. 중남미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인내심의 한계인 1시간에 접어들었을 때, 고물 차 한 대가 우리의 눈치를 살폈다. 택시라 하기엔 굴러가는 게 신통한 야생 오픈카였다. 천장엔 구멍이 나고, 가죽 시트 대신 뼈대만 남았으며, 여닫는 건 외부에서나 가능했다. 어찌 됐든 이 고물이 팔로미노와 카마로네스 사이, 밍궤오(Mingueo)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택시 기사는 스스로 구세주라 여기는 듯 카마로네스행 버스가 파업 중이라고 떠들어댔다. 밍궤오를 목전에 둔 리오 카나스(Rio Canas) 다리에서 진상이 드러났다. 쓰레기 처리를 등한시한 주 정부에 화난 주민이 다리를 막고 농성 중이었다.

카마로네스행 택시 내부. 차마 바닥에 깔린 박스 종이를 들춰보진 못했다.
카마로네스행 택시 내부. 차마 바닥에 깔린 박스 종이를 들춰보진 못했다.
쓰레기 문제로 아픈 사람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청소차를 원한다!”
쓰레기 문제로 아픈 사람들. “우리 아이들을 위한 청소차를 원한다!”

도보로 다리를 건넜다. 연결편은 제법 괜찮았다. 사람이 짐칸에 실려 가는 트럭, 카미오네타(Camioneta)가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이 없고 승객을 무작정 끼어 넣는 식이라 상대방 무르팍에 시선을 둬야 하는 고역의 이동이었다. 50여분 후, 차장이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풍경은 입이 바싹 마르는 사막이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서 카마로네스 중심가를 거쳐야 닿는 플라밍고 성지(Santuario de Fauna y Flora ‘Los Flamencos’)다. 이미 90번 도로로 7,000만km2 면적에 달하는 성지를 끼고 달려왔지만, 보카 데 카마로네스 혹은 플라야 데 카마로네스에 가야 접근성이 좋다. 엉덩이가 고단해 걸어볼까도 생각했지만, 이 뙤약볕에서 10분만 걸어도 실신하기 십상이었다. 연평균 기온이 30도를 넘는 곳이다. 나무그늘 아래 쉬던 오토바이 기사와 눈이 마주치자 이내 시동이 걸렸다.

“Vamos(자, 가자)!”

바짝 마른 염소만이 길을 막던 도로(via Playa Camarones).
바짝 마른 염소만이 길을 막던 도로(via Playa Camarones).

폭주하는 오토바이는 카마로네스 중심가를 번개같이 스쳤다. 이내 인간의 손길이 거세된 사막을 달렸다. 와유(Wayuu) 인디오 부족에게 카누를 빌려 플라밍고 서식지까지 가야 한다는 정보를 얻었건만, 땅은 물기 하나 없이 말라 있었다. 카리브해가 지척인 것조차 의심스러웠다. 아스팔트가 끊기고 모랫길에 힘없이 지어진 초가지붕을 지나자 시야가 트였다. 좌로는 호수, 우로는 바다였다. 좀더 호수 쪽으로 오토바이 엔진이 포효하자, 새떼가 줄지어 날았다. 붉은 핑크의 날개와 잿빛 파란 하늘의 보색대비. 우리가 이곳에 온 이유, 바로 플라밍고였다.

카마로네스의 첫인상. 육지에 다닥다닥 붙은 물새 위로, 창공을 가르는 플라밍고의 도약.
카마로네스의 첫인상. 육지에 다닥다닥 붙은 물새 위로, 창공을 가르는 플라밍고의 도약.

플라밍고는 비현실에 가까운 새다. 사진으로 접한 플라밍고는 연애 감정처럼 마냥 예쁘지만, 육안으로 보면 무릎이 떨릴 정도로 아름다운 환상을 안긴다. 야생 조류 전문가인 멜리사(Melissa Mayntz)가 말한 안데스 플라밍고와 푸나 플라밍고 등 6종 가운데 아메리칸 플라밍고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들이 정한 사람과의 경계 거리를 우린 알지 못한다. 조심스레 다가가면, 물에 번지듯 먼 발치로 나아갔다. 뜀박질로 겁을 줘야만 상공을 치고 올랐다. 시속 56km로 날 때면 키가 150센티미터에 달했다. 하늘로 마실 간 새는 다시 새침하게 제자리다. 얼굴을 호숫물에 처박고 물질을 했다. 해조류와 새우 등 먹이의 붉은 카로테노이드(carotenoid) 색소가 이들을 붉게 물들였다니, 플라밍고야말로 얼마나 솔직한 몸인가. 새하얀 축에 끼는 플라밍고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증표였다. 매해 물이 차는 시기인 10월~11월이면 2,000~3,000 마리의 플라밍고가 이곳에 몰린다.

볼리비아의 라구나 콜로라다(Laguna Colorada)의 플라밍고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창백한 핑크 빛 안데스 플라밍고인 반면,
볼리비아의 라구나 콜로라다(Laguna Colorada)의 플라밍고는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한 창백한 핑크 빛 안데스 플라밍고인 반면,
카마로네스의 플라밍고는 명징한 선홍색을 띠는 아메리칸 플라밍고다.
카마로네스의 플라밍고는 명징한 선홍색을 띠는 아메리칸 플라밍고다.
우리가 생각하는 플라밍고의 무릎은 발목에 해당한다. 긴 목은 뼈가 없는 듯 유연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플라밍고의 무릎은 발목에 해당한다. 긴 목은 뼈가 없는 듯 유연하다.

플라밍고의 적응력은 새 중에서도 인정된 바 있다. 염분이 섞이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물가에 잘 서식하며 경쟁을 피한다. 다른 새와 치열한 먹이 다툼이 일어나는 곳 대신 그들의 뱃속이 든든해질 지대에 군집을 만든다. 주로 단 하나의 알을 낳기에 자식을 지키는데 필사적이다. 고로 서식지 파괴는 이들에게 최대 두려움이다. 자연재해라도 입을 때면, 대를 이어가는데 수년의 공을 들여야 한다. 호수 안쪽에 진을 친 플라밍고 무리와 달리 호숫가엔 검은 집게 제비갈매기(Black Skimmer)가 검은 물을 들이고 있었다. 거센 바람에도 꿋꿋이 버티는 깡다구 있는 새다. 그 앞으론 ‘혼밥’에 익숙한 중부리도요가 제각기 먹이를 찾고 있었다.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빨려 들어갈 듯한 카마로네스 해변.
빨려 들어갈 듯한 카마로네스 해변.
마치 모래에 코를 푹 박은 강아지처럼. 자연의 조각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마치 모래에 코를 푹 박은 강아지처럼. 자연의 조각은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다.
라과히라 주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공용 쓰레기통 찾기.
라과히라 주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는 공용 쓰레기통 찾기.

호수의 반대편은 해변이다. 야자수를 쫓아가니 오후의 햇살이 고개를 들었다. 사람 대신 쓰레기 바람이 불었다. 인디오의 집은 악취와 함께 쓰레기 태우는 연기로 뒤덮였다. 플라스틱 비닐과 금속 캔이 속절없는 세월을 이기고 있었다. 쓰레기를 줍다가 화가 났다. 팔로미노에선 매달 가구당 2,000 콜롬비안 페소(약 745원)를 내야 6개 마을을 도는 청소차 한 대를 겨우 이용할 수 있다. 이조차 극빈층의 대가족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곳은 아예 버려진 것일까, 잊혀진 것인가.

돌아가는 버스에서 내내 속앓이를 했다. 라과히라 주 관광부서에 메일 한 통을 보냈다. 플라밍고의 아름다움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해도 바뀌지 않을 거란 무력감과 변화는 작은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한 줄기 희망이 섞여 있었다. 여행은 현실을 직시하는 냉정을, 부당을 좌시하지 않는 행동을 가르쳐 주었으니까. 희망에, 우릴 걸었다.

강미승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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