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관저 머물며 촛불 보고받아
檢 조사 최후통첩에도 침묵 일관
국정 컨트롤타워 사실상 마비
요즘 청와대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유폐 상태다. 민심ㆍ정치권ㆍ검찰이 사나운 속도로 몰고 가는 탄핵 정국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뿐이다. 4%까지 무너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과 더불어 청와대의 권위와 국정 동력이 함께 ‘제로(0)’에 수렴해 가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구중궁궐에 깊이 숨었다. 18일 정무직 공직자와 대사들에게 신임장을 주는 모습을 언론에 공개한 이후, 박 대통령은 27일로 9일째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칩거하며 한광옥 비서실장을 비롯한 소수의 핵심 참모들만 수시로 만나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 190만개가 전국에서 타오른 26일 밤에도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홀로 머무르며 집회 상황 보고만 받았다.
박 대통령의 메시지도 사라졌다. 4일 2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고 8일 국회를 찾아가 국무총리 추천권을 여야에 넘기겠다고 선언한 것이 박 대통령이 내놓은 마지막 발언이었다. 여권 인사는 “각계 인사들이 청와대 참모들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정국 해법에 대한 의견을 전달하고 있지만, 피드백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6일 5차 촛불집회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의 뜻을 다시 한 번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듣고 겸허한 자세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1~4차 때와 똑 같은 공허한 반응이었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버티겠다는 의지가 강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29일까지 대면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검찰의 최후 통첩도 청와대는 침묵으로 뭉개고 있다. 박 대통령은 편파적인 검찰 수사는 보이콧하고 특검 조사만 받겠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에게 뇌물혐의를 적용하려는 검찰의 파상 공세에도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유영하 변호사가 입장을 밝힐 문제”라며 대응을 피하고 있다.
다만 박 대통령이 이번 주 중 입장을 낼 가능성이 청와대에서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청와대 인사는 “국회가 대통령 탄핵안 처리를 시도하는 내달 2일 또는 9일 전에 최후의 변론 또는 마지막 소명 기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돼 검토하고 있다”며 “탄핵안이 가결돼 대통령 권한이 정지되면 박 대통령이 발언할 기회도 사라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른 청와대 인사는 “이미 민심을 돌려세우기 어려운 상황에서 1,2차 대국민담화 때처럼 역풍만 일 수 있어 고민 중”이라며 “박 대통령이 입장을 낸다면 3차 대국민담화 형식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탄핵만 기다리고 있는 사이, 청와대의 국정 컨트롤타워 기능은 마비됐다. 교육부가 25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재검토 방침을 일방적으로 발표했지만 청와대는 끝내 제동을 걸지 못했다. 이준식 교육부총리와 김용승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은 26일 만나 “28일 공개되는 현장검토본을 보고 다시 협의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국정화를 밀어붙일 힘이 없는 청와대와 국정화를 당장 철회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교육부가 일단 ‘추가 협의’라는 절충점을 찾아 충돌을 막았지만,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사실상 폐기 수순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많다. 최근 전국으로 확산 중인 고위험 조류독감(AI)과 60일을 넘긴 철도파업 등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주 사표를 낸 김현웅 법무부장관과 최재경 청와대 민정수석의 거취 문제도 정리하지 못한 채 시간을 끌고 있다. 최 수석은 박 대통령이 붙잡으면 소임을 다 하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김 장관은 사의를 접지 않고 있다고 한다. 정권 사정라인의 두 축이 흔들리는 상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는 것 자체가 식물 청와대의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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