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차집회 190만… 6월 항쟁 후 최대
세계 20개국 50개 지역서도 참가
靑 포위하고 “朴 구속” 구호까지
정치권은 민심 따라잡기에 급급
“헌재 결정에도 시민이 감시 역할”
정당성을 상실한 통치권자에게 위임된 권한을 거둬들이겠다는 유권자들이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난달 29일 3만명으로 시작한 촛불집회 규모는 한달 새 190만명으로 60배가 늘어나며 26일 헌정사 최대의 집회를 기록했다. 국정농단 규탄에서 박근혜 대통령 하야, 탄핵으로 시시각각 뚜렷했던 시민의 함성은, 미적거리던 정치권의 대통령 탄핵 추진을 밀어붙인 실질적인 힘이었다.
26일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촛불집회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150만명(경찰 추산 27만명)이 참여한 것을 비롯, 부산과 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모두 190만명(경찰추산 32만명)이 함께 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청계광장에 3만명이 모인 촛불집회 참가자 수는 이후 20만명(2차), 100만명(3차), 95만명(4차), 150만명(5차)으로 급속하게 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시민집회로는 최다 참가 인원이다. “하야 눈이 내린다”는 집회 참가자의 발언처럼 몰아친 눈보라조차 저항의 불길을 막지 못했다. 광장에 나가지 않은 시민들은 오후 8시 ‘저항의 1분 소등 및 경적 행사’에 뜻을 보탰고, 전 세계 20개국 50개 지역에서도 촛불이 켜졌다. 청와대를 동·남·서쪽으로 포위하듯 에워싸는 ‘청와대 인간띠 잇기’가 실현돼 박 대통령이 위기감을 피부로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내자동로터리 인근에서는 횃불 행렬까지 등장했다.
기록적인 촛불 민심의 결집은 박 대통령이 ‘검찰조사에 충실히 응하겠다’는 약속을 뒤집는 등 버티기에 들어간 것이 영향을 미쳤다. 3차, 5차 집회에 참석했다는 시민 박종희(38)씨는 “이 정도로 목소리를 내는데도 박 대통령이 못 알아듣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거듭된 집회에서 질서는 경이롭게 유지됐고 구호는 나날이 강경해졌다. 최순실(60ㆍ구속기소)씨의 대통령 연설문 개입과 박 대통령 1차 대국민 사과 후 열린 1차 집회까지만 해도 주요 구호는 ‘최순실 국정 농단 규탄’으로, 박 대통령을 겨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최씨의 범죄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고, 진정성이 결여된 대통령의 2차 대국민사과에 시민들의 분노가 거세지면서 “박근혜 하야”(2차)에서 “박근혜 퇴진”(3차), “즉각 퇴진”(4차)으로 수위가 높아졌다. 급기야 지난 20일 검찰이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전환한 이후인 5차 집회에서는 “구속하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5차 집회에 참석한 시민 김모(45)씨는 “이쯤 되면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장막을 걷어내고 정확한 범죄 혐의를 조사 받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치권은 민심을 뒤따랐다. 처음에 야권은 모호한 ‘대통령 2선 후퇴’를 주장하다 청와대가 책임총리를 임명하겠다고 하자 오히려 이를 거부하는 혼란을 노출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미적거리다 이번 주에야 탄핵소추안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는 등 촛불 민심을 겨우 따라잡고 있다.
앞으로 촛불 민심은 국회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을 감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응축된 시민들의 힘을 고려할 때 헌법재판소 결정이 너무 오래 걸릴 경우 직접 퇴진 압박을 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시민들이 제도권의 결정만 기다리지 않고 더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성환기자 bluebird@hankookilbo.com
박진만기자 bpd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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