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소리 높여/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가수 안치환(51)의 가슴을 치는 노랫말이 허스키한 부르짖음과 함께 허공을 갈랐다. 저마다 어둠을 밝히던 시민들은 더 격렬하게 한쪽 팔을 흔들며 노래에 호응했다. 안치환이 저항시인 김남주의 시 ‘자유’를 노랫말로 옮긴 곡 ‘자유’를 끝맺자 26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수놓은 150만 촛불함성은 더욱 거세졌다.
어느새 다섯 번째로 접어든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에 한때 시대의 울분을 담아냈던 저항가요가 등장하고 있다. 30~40년 전 군사독재 정권 아래 숨죽여 울려 퍼졌던 저항가요지만 당시 권력의 비민주적 폭압과 가사가 품은 시대정신만큼은 여전했다. 시민들은 목청을 높여 과거의 노래를 불렀지만 “이런 노래가 2016년에 재현되는 현실은 끔찍하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날 제5차 촛불집회 무대에 첫 번째 가수로 소개된 안치환은 “제 음악인생에서 가장 귀중하고 소중하고 부담스럽지만 영광스러운 무대에 서 있다. 전 세계에서 봐 왔던 그 어떤 바다보다도 아름답고 평화롭고 엄격한 촛불의 바다가 제 앞에 펼쳐져 있다”고 말해 시민들의 함성을 이끌어냈다.
가요계 대표적인 저항가수로 꼽히는 안치환은 곡마다 시대의 울분과 시민들을 향한 따뜻한 위로를 담아내 왔다. 지난 17일에는 ‘권력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이란 제목의 곡을 발표해 최근 권력을 향한 국민적 저항에 동참하기도 했다.
안치환은 이날 김광석의 곡이자 자신이 훗날 리메이크한 곡 ‘광야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총 4곡으로 시민들의 상처를 보듬었다.
무대에서 그는 “외신에서도 보도하듯이 우리가 가장 폼나는 비폭력 시위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시간을 끌다가 더 초라하고 처참하게 끌려 나오기 전에 인간적 예우를 갖춰주고 신속하게 퇴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라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자신의 대표 곡 중 하나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부르기 전에는 “제 노래를 훼손하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 노래에 나오는 ‘사람’이라는 단어를 ‘하야’로 바꿔 불러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안치환의 요구대로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를 함께 불렀다.
안치환은 이한열 열사의 추모곡으로도 알려진 마지막 곡 ‘마른 잎 다시 살아나’를 앞두고는 “이명박 정부 때부터 현 정부까지 쌍용차 노동자들, 세월호 유가족들 최근 백남기 선생까지 쓰러져 간 무고한 생명들에 대해 진정으로 가슴 아파했는가 반성한다. 이 자리에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르고 싶은 노래”라고 말했다.
뒤이어 가수 양희은(64)이 예고 없이 이날 무대에 올라 시민들을 놀라게 했다. 특유의 청아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토해낸 ‘아침이슬’이 울려 퍼지자 광화문 일대는 엄숙함이 밀려왔다.
1971년 발표된 ‘아침이슬’은 당시 독재정권이 지정한 금지곡으로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손꼽힌다.
노래가 끝난 뒤 특별한 발언 없이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한 양희은은 마지막 곡으로 ‘상록수’를 선택했다.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깨치고 나아가/끝내 이기리라’. 그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 없는 노랫말에 시민들은 저마다 터져 나오는 감동을 열창으로 표현하기 바빴다. 양희은도 2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자신의 계정에 “아침이슬은 46년째, 상록수는 39년째. 그렇게 파란만장한 노래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불씨를 되살려 제게 돌려 주시니까, 그 분들께 진 그 큰 빚을 갚아야 눈을 감더라도 감고 떠날 수 있겠지요”라는 글을 남기며 전날의 감동을 전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시대를 넘나드는 노래의 힘을 절감하면서도 과거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은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집회에 참여했던 주부 조인혜(39)씨는 “촛불 위로 상록수가 울려 퍼질 때의 감동을 한 동안 못 잊겠다”고 말했고, 회사원 한재원(40)씨는 “아주 오래 전 노래들인데 세상도 그 때로 멈춘 것 같아 한편으로 암울한 기분이었다”며 당시의 소회를 전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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