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의 자녀 회사에 일감을 일방적으로 몰아 준 대한항공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들 조원태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그러나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항공을 떠난 조 회장 장녀 조현아씨(전 대한항공 부사장)는 책임이 상당 부분 인정됨에도 고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해 봐주기 논란이 일 전망이다.
공정위는 대한항공이 계열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에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와 관련, 이들 3개 회사에 시정명령과 함께 총 14억3,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27일 밝혔다. 또 공정위는 일감 몰아주기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혐의로 조 부사장과 대한항공 법인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땅 짚고 헤엄친 조씨 삼남매
공정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조 회장의 세 자녀(현아ㆍ원태ㆍ현민)가 각각 33.3%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인 싸이버스카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면서, 대한항공에는 불리하고 싸이버스카이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담았다. 대한항공은 싸이버스카이 측에 기내면세품 예약 사이트 운영을 위탁했는데, 대한항공이 직접 만든 인터넷 광고의 수익을 전액 싸이버스카이가 가져가도록 했다.
또한 대한항공은 싸이버스카이가 통신 판매를 하는 상품의 경우 계약상 판매금액의 15%를 수수료로 받아야 함에도 정당한 이유 없이 이 수수료를 면제해 줘, 싸이버스카이가 이익을 누릴 수 있게 해 줬다. 심지어 대한항공은 자사가 수수료를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기내 승무원을 동원해 관련 상품 홍보책자를 돌리는 등 싸이버스카이를 위해 홍보활동을 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싸이버스카이를 통해 판촉물을 구입하면서 싸이버스카이 측의 마진율을 4.3%에서 12.3%로 세 배 가량 올려주기도 했다.
이 같은 일방적 지원 덕분에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대한항공이 매년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도 조 회장 삼남매가 소유한 싸이버스카이는 매년 2억~5억원의 안정적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으로 싸이버스카이의 매출 중 한진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한 것이 67.5%에 달한다”고 밝혔다.
조 회장과 삼남매가 공동으로 소유한 가족회사 유니컨버스에 대해서도 혜택이 집중됐다. 2009년 대한항공은 콜센터 경험이 없는 유니컨버스 측에 콜센터 업무를 위탁했는데, 유니컨버스에 시설 사용료와 유지보수비를 과다 지급하는 방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니컨버스 매출 중 한진그룹에 의존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74%에 달한다. 유니컨버스 역시 대한항공의 적자행진 와중에도 2014년 20억원, 지난해 12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조현아는 고발대상 제외 논란
공정위는 한진그룹 총수일가의 일감 몰아주기를 적발하는 성과는 거뒀지만, 조원태 부사장의 관여 정도만 중한 것으로 보아 조 부사장만 검찰에 고발하기로 했다. 조 부사장이 대한항공에서 콜센터 담당부서인 여객사업본부장을 맡고 있으면서, 동시에 거래 회사인 유니컨버스에서도 최대주주 겸 대표이사의 역할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에 책임이 크다고 본 것이다.
조 회장의 장녀 조현아씨와 차녀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를 고발 대상에서 뺀 것에 대해서는 뒷말이 나온다. 공정위 관계자는 “계속 중인 거래에 대한 총수일가 사익편취 금지 규정은 지난해 2월부터 효력을 발휘했는데, 조현아씨는 (땅콩 회항 사건 때문에) 2014년 말에 이미 사임을 해 책임을 묻기가 어려운 것으로 봤다”고 그 경위를 설명했다. 법이 효력을 발휘하는 기간에는 임원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공정위의 이 같은 설명은 그대로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2006년 대한항공 상무보, 2009년 전무에 올랐던 조현아씨는 2014년 1월부터 대한항공 총괄부사장으로 재직하며 싸이버스카이와 유니컨버스 등 계열사와의 계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싸이버스카이와의 거래에서 문제가 된 기내면세품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삼남매 회사에 이익을 몰아주는 구조를 만드는 과정에 조현아씨가 관여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 내부적으로 (소추 역할을 하는) 사무처에서는 조 부사장과 조현아씨를 모두 고발하자는 안을 냈지만, (심판 기능을 하는) 위원회가 조현아씨를 고발 대상에서 제외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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