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기존설명 뒤집고
군사적 효용성 의문
국민정서 무시한 폭주
“에이,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체결할 수 있겠어?”
2011년 1월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6년 가까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때의 상황을 또렷이 기억한다. 당시 국방부는 한일 국방장관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다.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겪으며 북한의 도발에 워낙 진저리가 날 때라, 그 동안 금기로 통했던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조심스럽게 수면 위로 꺼낸 것이다.
하지만 GSOMIA는 이후로도 줄곧 ‘판도라의 상자’ 안에 갇혀 있었다. 더구나 2012년 6월 정부가 국민적 동의 없이 일본과 밀실에서 협정을 체결하려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도쿄에서 서명하기 불과 40분 전에 전격 취소되는 ‘외교참사’를 빚기도 했다. 당시 외교부 고위관계자는 “서명을 취소해? 그건 국제적인 X망신이야”라며 반발했지만, 한번 등을 돌린 여론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4년 5개월이 지났다. 정부는 11월 23일 온갖 비판과 우려에도 아랑곳없이 끝내 일본과 GSOMIA 체결을 강행했다. 10월 27일 국방부가 돌연 협정 체결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지 불과 27일 만이다. 지난 4년, 아니 길게는 6년간 여론의 눈치만 살피던 것을 감안하면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너무나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이로써 한국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과 첫 군사협정을 맺었다. 좋든 싫든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본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다.
그간의 논란에 비하면 협정 문안은 지극히 평범해 보인다. GSOMIA는 국가 간 군사비밀을 공유하면서 지켜야 할 보안원칙을 담은 협정이다. 정보의 제공 방법과 보호 원칙, 파기 방법, 분실 대책 등을 정하고 있다. 한일간 2ㆍ3급 비밀을 구두(口頭), 영상, 전자, 자기, 문서 등 거의 모든 형태로 교환할 수 있다. 심지어 군사장비와 기술까지 대상에 포함된다. 한국은 앞서 32개국과, 일본은 6개국과 GSOMIA를 체결했다.
한일 양국은 GSOMIA를 통해 대북정보의 취약점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은 고위 탈북자를 통해 입수한 인간정보(HUMINTㆍ휴민트)와 북한지역에 근접해 정찰기로 수집하는 감청ㆍ영상정보(SIGINTㆍ시긴트)에 비교우위가 있다. 이와 달리 일본은 우리가 하나도 없는 정찰위성을 5기나 보유했고 ‘신의 방패’라 불리는 이지스함(6척)은 2배, 바다를 샅샅이 탐지하는 해상초계기(77대)는 우리보다 5배나 많다. 따라서 양국의 강점을 합하면 대북정보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대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여전히 3가지가 석연치 않다. GSOMIA는 국방부의 기존 설명에 배치돼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군사적 효용성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안보 폭주’나 다름없다.
먼저, 국방부는 2014년 12월 미국을 매개로 일본과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3국간 약정을 체결했다. ‘한국→미국→일본’, 혹은 ‘일본→미국→한국’ 이런 식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누가 봐도 번거로워 보이지만, 당시 국방부는 “미국이 중간에 끼어있어야 일본과 교환하는 정보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며 “미국을 거친다고 해서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달리 일본은 우리에게 동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직거래’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2년이 지난 지금, 국방부는 “미국을 거치면 일본과의 신속한 정보교환이 어렵다”며 입장을 180도 바꿨다. 지난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과 실전배치를 앞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때문에 안보상황이 달라졌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2년 전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을 체결할 때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다”며 자화자찬하더니, 이제는 “핵ㆍ미사일 위협 때문에 일본과 협정을 맺어야 한다”며 딴소리다.
다음으로, 일본의 대북정보가 우리에게 얼마나 유용한지도 의문이다. 현재 합동참모본부는 한미연합사령부가 파악한 북한의 동향을 사실상 실시간으로 받는다. 일본이 그보다 가치 있는 정보를 우리에게 넘길까. 일본은 올해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을 수 차례 침범했지만, 발사징후를 제때 파악하지 못해 호들갑을 떨곤 했다. 한미동맹이 원활하게 작동한다면 굳이 일본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일본은 지난 3월 안보법제 시행 이후 자위대의 군사적 역할이 커졌다. 반면 미국은 예산감축(시퀘스터)으로 동북아에서 군사적 부담을 일본에게 떠안기는 추세다.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한미일 3각 안보협력이다. 정부 소식통은 “한일 GSOMIA는 애당초 미국이 등 떠밀어서 체결한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GSOMIA는 여전히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시기상조’라며 반대하는 협정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10월 5일 국회에 출석해 “아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며 걱정 말라더니, 불과 3주 만에 협정 재개를 선언하며 오락가락했다. 비판여론이 커지자 “장관 직을 걸겠다”며 결기를 보였다. 심각한 안보위기라면서, 국방장관이 난데없이 승부수를 띄우는 이상한 모양새다. 심지어 협정 서명조차 비공개로 진행했다. 졸속추진에 밀실서명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일 GSOMIA는 유효기간이 1년이다. 어느 한쪽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야 자동 연장된다. 1년 후에 국민들은 한 목소리로 GSOMIA를 지지할 수 있을까.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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