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피해 이용수 할머니
"대구가 뽑았으니 우리가 끄집어내리자"
5만 인파 한 목소리…
1주일 만에 2배로 늘어
눈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고향 대구에선 '대통령 하야' 함성이 도심을 진동시켰고, 촛불은 들불처럼 거세게 타올랐다.
26일 오후 3시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5시쯤부터 대구 중구 반월당네거리-중앙네거리 사이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선 차량통행을 전면 통제한 채 '박근혜퇴진대구비상시국국민행동' 주최로 '내려와라 박근혜 4차 대구시국대회'가 주최측 추산 5만여 명(경찰 추산 1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열렸다. 당초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궂은 날씨를 고려하면 기대 이상으로 많은 시민이 모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이날 대회엔 계모임, 동창모임, 데이트 도중에 "날씨가 좋지 않아 사람이 적게 모이면 어떡하나"며 달려온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김모(53)씨는 "1년에 한 번 모이는 동창 모임을 빨리 끝내고 함께 시국대회에 참가했다"며 "대회를 마친 뒤 어디 가서 현 정권을 안주 삼아 취해야겠다"고 말했다.
학생 노동자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의 자유발언에 이어 중앙네거리-공평네거리-봉산육거리-반월당으로 대구 도심을 한바퀴 돌아 행진한 시민들은 이날 오후 8시쯤 같은 자리에 재집결했다. 방송인 김제동의 사회로 9시35분까지 계속된 '만민공동회-광장을 열다'에서 시민들은 현 정권의 부당성과 하야의 당위성 등을 논리정연하게 피력했다.
이날 자유발언과 만민공동회에선 평소 진보적 성향의 시민들은 물론 보수적인 사람들도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과 최태민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을 강력 비판했다.
자유발언에 나선 이태규(55ㆍ대구 동구 지저동)씨는 “김진태 눈에는 우리 이 촛불이 바람불면 꺼지는 불로 보이나 보다”며 “우리 국민은 들불이다. 바람이 불면 더욱 활활 타올라 더욱 뜨거운 주권이 된다. 뜨거운 들불로 11월의 뜨거운 함성으로 쓰러뜨리자”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역사의 산증인 이용숩니다”라며 지팡이를 짚고 무대에 올랐다. 이 할머니는 “지까짓게(제까짓 것이) 뭔데 합의(한일위안부합의)를 해? 지 까짓게 뭔데 나를 두 번 세 번 죽이나”라며 “(박대통령)우리 대구가 뽑았다. 우리가 끄집어 내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대회에도 가족과 함께 참가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모차는 물론 외투를 꽁꽁 싸맨 아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었다. 4명의 자녀와 집회를 찾은 이상흔 (46), 김경애(43ㆍ여)씨 부부는 “추워서 아무도 안 나올까봐 걱정돼 나왔다”며 “버티면 우리가 수그러들 줄 아는데 내려오게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경북 영천에서 아내와 함께 온 하성태(54)씨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우리가 꺼지나 봐라”며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10대들도 목소리를 냈다. 만민공동회 첫 번째 발언자인 양지은양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나라다”며 “왜 정치만 하면 저럴까 답답해서 여기에 왔다”고 말했다. 대곡고3 안효신(여ㆍ19)양과 노신영(19)군은 시내로 데이트를 왔다가 참여했다. 안양은 “보고는 지나칠 수 없는 자리다”며 “우리 엄마,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을 대통령이란 사람과 그 측근들이 개인의 욕심을 위해 쓴 것은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계획보다 자유발언 신청자가 많아 예정된 시간보다 40분 여 늦은 오후7시 10분쯤 거리 행진을 했다. 중앙네거리~공평네거리~봉산육거리~반월당을 돌아 오는 행진 참가자는 2만5,000여 명에 달했다.
오후 8시 20분 김제동씨가 등장해 반월당 본무대에서 만민공동회가 시작됐다. 김씨는 “시민들이 이렇게 모인 게 헌법이다”며 무대에 등장, 1시간 15분 여 동안 자리에 앉은 시민들 사이를 다니며 이야기를 들었다 .
김씨는 “대구는 전두환, 박근혜의 고향이기 전에 곽재우 장군이 지켜낸 땅이고 노동자들을 위해 일하던 청년 전태일의 고향이기도 하다. 2.28학생운동, 국채보상운동을 한 고장으로 대구의 정신은 살아있다. 여러분들의 고향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며 “이 땅의 산업화를 일군 것은 박정희대통령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아버지 어머니들이다. 박 대통령 동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을 위해 세금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배유미기자 yum@hankookilbo.com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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