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명백히 써 있는 권리입니다. 시위를 막는 경찰에게 화난 분들 모여주세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5차 촛불집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시청 앞에서 ‘시민불복종행동’ 소속 회원 10여명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소리쳤다. 이들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백지 피켓과 매직펜을 나눠준 뒤 집회ㆍ결사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를 적어 넣는 ‘헌법피켓 만들기’ 행사를 진행했다. 국민의 저항권이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취지다. 시민 김상경(40)씨는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이 의무가 된다는 말이 있다는데 공감한다”며 “현 시국이 하도 어이가 없어서 딸에게도 직접 헌법 피켓을 쓰게 했다”고 말했다.
시민불복종행동은 지난 19일 열린 4차 촛불집회의 한계를 지적하며 생긴 모임이다. 4차 촛불집회는 시위대를 가로막는 경찰버스에 꽃 스티커를 붙이고, 청와대 인근 경복궁역 사거리에서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려는 일부 시민들을 시위대 스스로 끌어내는 등 ‘가장 평화로운 집회’로 평가 받았다.
이들은 그러나 박 대통령의 버티기 행태에 비춰볼 때 현재의 시민투쟁은 과도한 자기검열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모임에 참여한 대학생 김모(25)씨는 “촛불집회는 하룻밤 콘서트가 아니라 공권력에 대한 문제제기인데 시민들이 너무 비폭력 프레임에 갇혀 적극적인 행동을 못하고 있다”며 “촛불집회가 계속 제약을 받는다면 정권 퇴진 목표는 흐지부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교생 김모(18)군 역시 “3차 촛불집회에서 집회 결사의 권리를 행사하려고 모인 시민들이 먼저 차벽을 철거하라고 항의하는 남성을 끌어내리는걸 보고 회의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회원들이 생각하는 시민불복종 운동은 무조건 물리력이나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하고 적극적인 방식의 저항을 의미한다. 모임에 참가한 뮤지션 정모(27ㆍ여)씨는 “우리가 오늘 피켓을 들고 나왔듯 화염병을 던지거나 쇠파이프를 드는 것만 불복종이 아니다”라며 “트랙터를 끌고 온 농민들의 상경이 저지당한 것처럼 조금 강경해 보인다고 선을 그으면 약자들이 행사할 수 있는 최후의 저항은 이제 불가능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임은 시민들이 ‘비폭력ㆍ평화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저항이 국민의 권리임을 알리는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다. 모임을 처음 제안한 엄재희(27)씨는 “지금 언론이 주도하는 비폭력 평화프레임에 반감을 가진 시민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며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는 태도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현실을 비판하기 위해 헌법 21조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알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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