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김기춘(77)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두고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쏟아지는 김 전 실장 관련 의혹들을 보면 어떤 연유로 그런 말을 했는지 의아하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각종 이권 사업 및 기업들의 인사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와 관련해 김 전 실장이 ‘몸통’이라는 주장을펴고 있다.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김 전 실장을 통해 최순실씨를 알게 됐다”고 진술했고 차은택씨는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을 김 전 실장에게 소개했다”고 말했다. 또 2014년 권오준 포스코그룹 회장 선임에 개입하면서 이런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는 지침까지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보도된 고(故)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따르면 언론과 시민단체를 이용한 여론조작, 정윤회 문건 유출사건 축소ㆍ은폐,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사법부 길들이기 등에도 김 전 실장이 관여한 것으로 돼 있다. 비망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전방위적인 개입이다. 그렇다 보니 일각에서는 김 전 실장이 2013년 한국에너지재단 이사장에서 역대 최고령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발탁된 것도 이 같은 막후 능력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
박정희 라인 입성과 공작의 멘토 신직수와의 만남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역사와 책임’이라는 저서에 수록한 ‘김기춘뎐(傳)’을 통해 김 전 실장의 단면을 알 수 있는 과거를 소개했다.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정권 시절 잘 나가는 공안 검사였다.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3학년인 196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 후 1961년 해병대 법무관으로 입대해 군 복무 중 서울대 대학원을 다녔다. 그가 ‘박정희 라인’에 영입된 것도 이때였다. 1963년 신설된 5ㆍ16 장학회의 장학생으로 선정돼 1964년까지 2년 연속 장학금을 받았다. 5ㆍ16 장학회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이다.
김 전 실장은 5ㆍ16 장학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신직수 전 법무장관을 만났다. 신 전 장관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군 사단장 시절 법무참모를 지내 1963년 검사 경력이 없는데도 36세 젊은 나이에 검찰총장으로 발탁됐다. 이후 신 전 장관은 법무부 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제 3공화국의 요직을 거치며 민청학련, 인민혁명당, 장준하 의문사 등을 처리했다. 하나같이 공작 정치로 의심받는 사건들이다. 이 때 김 전 실장은 신 전 장관의 총애를 받으며 보좌했다.
유신 그리고 문세광
김 전 실장이 박정희 정권에서 부상한 것은 두 가지 일 때문이다. 1971년 법무부 검사로 자리를 옮긴 뒤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헌법 초안을 만든 일과 박정희 대통령 암살 미수 및 육영수 여사 살해범인 문세광의 자백을 받은 일이다.
유신 헌법 제정에 상당한 역할을 한 한태연 전 서울대 법대 헌법학 교수는 2001년 한국헌법학회 학술대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구상한 유신 헌법을 법무부가 주도적으로 만들테니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았다”며 “법무부에서 신직수 전 법무장관과 김기춘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프랑스의 비상사태시 대통령 권한 등을 조사해 보고하는 정도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신헌법 제정 후 그의 발탁 승진을 보면 기여도가 컸을 것이라는 짐작이 간다. 1972년 유신헌법 제정 이후 김 전 실장은 법무부 과장으로 승진해 인권옹호과를 맡았다. 당시 사시 8회가 주요 승진 대상자였는데 12회였던 김 전 실장은 4년을 앞당겨 승진했다.당시 언론에서는 “유신 체제의 법령 입법과 개정의 공로와 실력이 높이 평가돼 유례없이 발탁됐다”고 보도했다.
김 전 실장은 당시 TV에 출연해 유신헌법 해설까지 맡았다. 그는 해설을 통해 “유신헌법은 우리의 헌법에 가장 알맞는 민주주의 제도를 이 땅에 뿌리박아 토착화시키는 일대 유신적 개혁의 시발점이며 국민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구국영단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후 김 전 실장은 1973년 신 전 장관을 따라 중앙정보부로 옮겼다. 이듬해 그는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했다가 실패한 문세광의 심문을 맡았다. 그는 묵비권을 행사하던 문세광에게 프레드릭 포사이드의 유명한 소설 ‘재칼의 날’을 읽었느냐고 질문해 입을 열게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 교수는 책에서 “당시 신문들을 보면 문세광이 이미 상당한 내용을 진술하고 있었다”며 “김기춘이 수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이 설명하는 만큼은 아니었다”고 적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머니의 원수를 갚아준 고마운 사람이 됐다. 세간에서는 이를 계기로 ‘기춘대원군’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위기에도 스러지지 않는 생명력
김 전 실장은 문세광 사건의 공을 인정받아 1974년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으로 승진했고 이듬해 21명의 대학생 간첩을 검거한 ‘학원 침투 북괴 간첩단’ 사건을 발표했다. 이 사건은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국내 대학생들을 포섭해 북한 노동당의 남한 분당을 만들려 했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2013년 재심에서 온갖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은 조작 사건으로 판명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피해자였던 이철은 지난해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중앙정보부 수사과정에서 속옷까지 다 벗기고 구타를 했다”며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약혼녀와 장모를 데려와 네 앞에서 범하겠다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김 전 실장은 유신 체제에서 승승장구했으나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타계한 10ㆍ26사건 이후 들어선 제 5공화국 시절 위기를 맞는다. 보안사령관을 지낸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군 장교 월북 사건을 조사하며 국군보안사령부를 축소시킨 김 전 실장을 좋게 보지 않았다. 김 전 실장은 옷을 벗어야 될 위기의 순간에 당시 정권 실세였던 박철언의 도움을 받아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교수의 책에 따르면 청와대 비서관인 대학 후배 박철언이 충성 맹세를 한 김 전 실장의 편지를 또다른 실세였던 허화평에게 전달해 살아남았다.
제 5공화국 시절 김 전 실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앙일보가 보도한 전 육영재단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던 1987년에 재단 직원들이 최태민과 딸인 최순실 부녀의 전횡에 반발해 분규를 일으켰다. 당시 법무부 법무연수원장이었던 김 전 실장이 육영재단을 방문해 최태민을 만나 사태수습을 논의했다는 증언이다. 이에 대해 김 전 실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이후 김 전 실장은 1990년 검찰총장을 거쳐 1991년 법무부 장관이 됐다. 그러나 그는 1992년 제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유명한 선거 여론 조작사건인 ‘초원복집 사건’에 휘말려 두 번째 위기를 맞았다.
그는 부산 지역 기관장들을 모아놓고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지역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했는데 이 사실이 통일국민당의 정주영 후보측에서 도청을 해 세상에 알려졌다. 그때 김 전 실장이 했다고 알려진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되면 영도 다리에 빠져죽자”는 말이 유명해졌다. 하지만 당시 언론이 여론조작보다 불법도청을 더 문제 삼았고, 법조계가 대통령선거법에 대해 ‘일반 국민의 선거운동 범위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위헌 결정을 내려준 덕분에 김 전 실장은 위기를 넘겼다.
이후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정권 시절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법사위원장을 맡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섰다. 그는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탄핵이 무산된 뒤에도 “노무현은 사이코다. 자기 감정도 조절하지 못하고 자제력이 없다”고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2007년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면서 김 전 실장은 박 후보의 법률지원단장을 맡아 오랜 인연의 끈을 다졌다. 그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7명의 정치 원로들의 모임인 7인회 멤버로 활동하며 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를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는 그에게 닥친 세 번째 위기다.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그가 2013년 최씨의 건물에 사무실을 얻고 박 대통령 휴가 때 동행해 비서실장으로 임명되는 등 막후 실세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김 전 실장은 이 모든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거나 모르는 일이라고 전면 부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서는 여전히 그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검찰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검찰 수사의 불똥이 튀지는 않았으나 과연 김 전 실장이 이번에도 위기를 운 좋게 넘길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김경준기자 ultrakj7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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