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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생활'은 몽땅 공개해야 마땅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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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사생활'은 몽땅 공개해야 마땅할까

입력
2016.11.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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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버시란 ‘오웰적 문제’가 아니라 ‘카프카적 문제’다.”

미국의 법학자 대니얼 솔로브가 쓴 ‘숨길 수 있는 권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국가권력이 개인의 사생활을 들여다 보는 게 어느 선까지 정당화될 수 있느냐, 안보와 프라이버시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쯤이냐는 논쟁은 늘 있었다. 책은 디지털 시대에 걸맞지 않은 수정헌법 4조와 제3차 원칙의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우리도 있었다. ‘다이나믹…’, 아니 ‘크리에이티브 코리아’에 걸맞게 청와대가 다양한 상상력을 북돋는 ‘의혹창조융복합센터’가 되어버린 지금에 와선 기억조차 잘 안 나는 ‘테러방지법’논란이다. 야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연일 화제가 됐던 게 불과 지난 2월의 일이다.

프라이버시 옹호론은 많다. 옹호론 가운데 솔로브 책의 강점은 이 프라이버시 범위에 대한 얘기를 더 명시적으로 끄집어 냈다는 데 있다. 국가안보처럼 중차대한 문제를 두고 개인의 사소한 프라이버시 따위가 뭐 그리 중요한 문제냐는 윽박지르기는 늘 있어왔기 때문이다. 속된 말로 “떳떳하면 까라, 안 까면 간첩 아니냐”는 논리 아닌 논리 말이다.

솔로브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를 다룰 때 많은 비평가들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비유로 든다”면서 “그러나 카프카의 ‘소송’이 더 나은 비유”라 주장한다. “정부가 사람들을 촘촘하게 감시하고 엄격하게 통제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묘사한 게 ‘1984’라면, ‘소송’은 “종잡을 수 없는 법원 시스템이 그에 대한 서류를 가지고 그를 조사하고 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더 알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버시 문제의 핵심은 ‘상대방의 감시와 통제’가 아니라, ‘내가 느끼는 무력감과 불안감’이다. 이런 관점에 서게 되면 논쟁의 틀 자체가 달라진다. 국가안보를 위해 거리낄 게 없다면 다 공개하라는 게 초점이 아니라, 거리낄 게 없는 정보라 해도 네가 그걸 가지고 뭘 할지 모르니 싫다는 게 핵심이다.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는,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나는 사람들 모두가 테러범이 아닌 이유다.

그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정의화는 국정원장에게 신뢰 회복의 약속을 단단히 받아뒀으니 너무 걱정 말고 안심하라는 식으로 얘기했다. 이걸 겨냥한 건 아니지만, 솔로브는 이렇게 써뒀다. “건강한 민주사회는 정부가 무조건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사회가 아니다.” 믿으라고 할 게 아니라 믿을 수 있도록 검증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건강한 민주사회다.

하여 국가안보 논리는 고스란히 부메랑이 된다.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존중해달라” “여성 대통령이라 그런 걸 묻는 건 결례라고 생각했다” 따위의 말을 듣고 뒷목 잡을 필요 없다. “그깟 사생활 따위 다 공개하라”고 하면 된다. “절대 나쁘게 안 쓸게” 씨익 웃어주면 더 좋다. 그러고 보니 ‘순실증 바이러스’야말로 테러 아닐까. 테러 중 최악이라는 세균테러 말이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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