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 규제는 감정적인 규제이고 대안 없는 규제다. 디젤 엔진의 장점을 희생하는 것은 국가경제 차원에서 거의 자해 수준이다.”
내연기관 전문가인 배충식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교수가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 파문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디젤차를 항변했다. ‘디젤 게이트’는 경쟁력을 유지하려는 폭스바겐의 욕심이 낳은 부작용인데, 이를 전체 디젤차의 본질로 이해하는 착시현상에 사로 잡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2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가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디젤 자동차의 미래’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 발제자로 나선 배 교수는 “디젤 엔진은 현존하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변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배 교수에 따르면 연료가 가진 고유 에너지가 활용 가능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이 가솔린은 평균 38%인데 비해 디젤은 43%다. 효율이 높은 만큼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가솔린보다 적고, 압축비가 높아 적은 공기로도 연소가 가능하다. 이는 연비가 뛰어나다는 의미다. 배 교수는 “우리는 천대하지만 일본 미국 독일 스웨덴 등은 열효율이 50%, 심지어 60%에 이르는 디젤 엔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디젤은 계속 발전했고, 앞으로도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지만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 산업은 언제 어떻게 쓰러질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이어 “디젤에 대한 감정적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 기술로 인해 생긴 문제는 기술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럼 진행을 맡은 전광민 연세대 교수도 “폭스바겐 사태로 전체 디젤이 누명을 썼다고 생각한다. 정보는 사실에 입각해 전달된 뒤 정책으로 연결돼야 하는데 지난 1년간 그게 안 됐다”고 말했다.
KAIDA가 초청한 독일 프랑스 일본의 자동차 전문가들 역시 디젤차가 미래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패트리스 마레즈 PSA그룹 부사장은 “디젤은 이산화탄소 감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토크가 높아 운전의 즐거움도 제공한다”며 “PSA는 ‘블루HDI’ 기술로 디젤 엔진이 배출하는 입자상물질(PM)은 99%, 질소산화물(NOx)은 90% 이상 제거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배출가스 저감을 위해 새로운 4기통 디젤 엔진(OM654)을 개발해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E클래스에 탑재한 독일 다임러AG의 피터 루에커트 디젤 파워트레인 부문 사장은 “배출가스 규제에 맞추기 위해 26억 유로를 추가로 투입해 전체 디젤 엔진을 새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일본자동차수입조합의 와다 마사노부 전 상무는 디젤차 점유율이 낮은 일본의 ‘클린 디젤’ 정책을 소개했다. 닛산자동차 출신인 그는 “일본에서 디젤차 점유율은 폭스바겐 사태 전 10.1%였지만 지금은 20%를 넘어섰다. 디젤 게이트는 폭스바겐의 문제이지 디젤차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라며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향후 일본에서 디젤차가 하이브리드차에 맞먹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디젤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국내외 전문가들의 토론도 이어졌지만 포럼의 주최가 국내에서 디젤차를 앞세워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수입차 업체들이라 “디젤의 가치를 재평가 하기엔 시작부터 한계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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