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의 들녘은 황금빛이다. 가는 곳마다 노랗게 익은 감귤열매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맛도 뛰어난 제주 감귤은 이 시기 최고의 제철 과일이라 할 수 있다. 감귤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신진대사를 원활히 하며 피부와 점막을 튼튼히 하여 감기예방에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비타민C의 작용으로 피부미용과 피로회복에도 좋다. 또한 비타민P(헤스페리딘)는 모세혈관 투과성의 증가를 억제하여 동맥경화, 고혈압 예방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감귤은 과육 자체에만 영양소가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먹고 버리는 귤의 껍질에도 상당한 약효가 들어있다. 중국의 ‘신농본초경(神農本草經)’에서도 인삼, 우황, 사향과 함께 가장 좋은 등급의 약초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진피(陳皮)라 부르는 감귤의 껍질은 기가 뭉친 것을 풀어주고 비장의 기능을 강화하여 복부창만, 트림, 구토, 메스꺼움, 소화불량, 헛배가 부르고 나른한 증상, 대변이 묽은 증상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약리작용으로는 소화기자극, 소화촉진, 거담, 항궤양, 항위액분비, 강심, 혈압상승, 항알레르기, 담즙분비촉진, 자궁평활근억제, 항균작용 등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 시기 제주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드물게 감귤껍질을 말리는 풍경을 보게 된다. 그 중에서도 성산포의 해안 목장일대에서 온 들판에 감귤껍질을 말리는 모습은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약용 또는 차를 만들기 위해 말리는 것이다. 요즘 시중에는 감귤의 껍질을 말린 진피차가 판매되기도 한다.
진피를 잘게 썬 뒤 뜨거운 물에 우려내 마시는 것이다. 특히 속이 더부룩하거나 감기 기운이 있을 때 마시면 좋다. 진피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농약을 쓰지 않은 감귤껍질을 잘게 썰어 말리면 된다. 이때 혹시나 묻어 있을지 모를 농약이 걱정된다면 우선 소금으로 껍질 겉면을 문질러주면 된다.
차로 마시는 외에도 전자레인지에 귤 1개 분량의 껍질을 넣고 1분 정도 가열하면 퀴퀴한 음식 냄새가 사라져 탈취제로 사용할 수도 있고, 감귤껍질 삶은 물을 식힌 뒤 분무기에 담아두었다가 싱크대나 가스레인지 등에 낀 기름때를 청소할 때 써도 좋다.
감귤껍질과는 별개로 제주사람들은 ‘댕유지’라 불리는 당유자를 이용한 차를 즐겨 마셨다. 특히나 감기몸살이 심할 경우 당유자와 생강, 배, 흑설탕을 함께 넣고 달여서 마시면 특효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병의원이 흔치 않던 시절 선조들이 즐기던 의학상식이다. 이를 위해 집집마다 유자나무 한두 그루를 일부러 심을 정도였다.
지금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지는 감귤껍질, 하지만 70년대만 하더라도 감귤은 귀한 과일이었다. 제주의 어린 아이들은 길가에 버려진 감귤껍질을 주워 먹기도 했다. 당시는 대학나무라 하여 감귤 몇 그루만 심어도 자식의 대학등록금을 충당하던 시기라, 귤은 먹을 수가 없고 대신에 껍질을 먹었던 것이다. 물론 농약이 흔치 않던 시절이라 가능한 얘기다.
최근 친환경 농산물들이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면 겉으로 보기에 모양이 볼품 없는 경우가 많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옛말은 바뀌어야 한다. 친환경 농법으로 생산한 제철 과일이 최고의 과일이라고.
강정효 ㈔제주민예총 이사장 hallasan1950@naver.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