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추론-긴 지문 ‘리트’
새로운 수능국어 유형 닮아
상위권 학생 연습용으로 인기
“어려워 자신감만 뚝” 지적도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다수 수험생들이 1교시 국어에서 고전했다. 입시전문가들도 국어가 당락을 가르는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도 예상했다는 듯 웃는 수험생이 있다. 재수생 전승현(19)군은 “올해 국어에서 실수로 한 문제 틀렸다. 지난해보다 성적이 올랐다”고 했다. 그는 ‘법학적성능력시험(리트)’을 비결로 꼽았다. “6월 모의평가에서 지문이 길어지고 문제가 어려워져 이후 리트를 활용해 대비했다는 것”이다.
상위권 수험생을 중심으로 로스쿨에 입학할 때 치르는 자격시험인 리트 공부 열풍이 불고 있다. 리트는 엄밀히 따지면 국어시험은 아니지만, 논리나 언어 추론 형태의 문제가 주로 출제되고 까다로운 과학 지문도 나오는데다 지문도 2,500자 정도로 길다. 이런 유형이 처음으로 문ㆍ이과가 통합되면서 급격히 길어진 지문(2,500자)에, 유난히 어렵고 새로운 문제가 출제된 올해 수능 국어와 닮았다는 것이다.
23일 각종 수능 관련 커뮤니티와 인터넷 사이트에는 “리트 한 문제당 몇 분씩 잡고 푸세요”, “리트 꼭 풀어야 하나요” 등 리트를 활용해 국어 공부를 하려는 질문이 수십 건 올라왔다. 그만큼 국어가 두려워 대비를 하겠다는 얘기다. 실제 9일 진학사가 수험생 605명을 설문한 결과, 가장 많은 학생들이 걱정하는 과목은 국어(37%ㆍ210명)였다. 전군은 “작년까지만 해도 리트를 푸는 학생이 거의 없었는데, 6월 모의평가 이후 리트를 공부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리트에 몰리는 이유는 수험생 입장에선 일면 타당해 보인다. 이원준 메가스터디 국어 강사는 “보통1,500자였던 독서 지문이 올해 6월 모의평가부터 갑자기 2,500자로 확 길어졌다”며 “시중 문제집들도 달라진 국어 출제 유형을 따라가지 못해 수험생은 공신력 있는 출제기관에서 나온 비슷한 길이의 리트 지문을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국어에서 오답비율이 가장 높았던 10개 중 9개는 지문을 독해하는 문제였다. 박평수 종로학원하늘교육 국어 강사는 “시험 출제 방식이 바뀌면 적용 대상 학생이 2학년일 때 예비 시행평가를 치르게 돼 있는데 작년엔 이를 치르지 않았다”며 “사설 모의고사도, 시중 문제집도 6월에 처음 선보인 새 유형을 따라잡기 어려워 그 틈새를 리트 문제가 파고 들었다”고 분석했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교 학부 졸업생이 푸는 수준의 리트 시험이 수험생들에게는 지나치게 어려워 공부 리듬을 흐트러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는 “실력에 비해 너무 어려운 문제는 자신감을 꺾을 수 있는 만큼, 우선 EBS 교재로 어휘력과 문법실력을 탄탄히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업계 관계자는 “리트 바람은 ’불수능’을 틈탄 사교육계의 상술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원준 강사는 “질 좋은 고난도 지문, 수능에서 어려웠던 과학 지문이 리트에 종종 출제되는 만큼, 어려운 문제는 제외하고 지문만 적절히 활용하면 어려운 수능에 대비한 독해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 조언했다.
김민정 기자 fac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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