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생산능력 40배 높이고
2년간 무사고 조항도 신설
연말 5차 인증 사실상 불가능
“사드배치 보복 성격”해석도
중국 정부가 전기차에 대한 보조금 지급 기준으로 삼고 있는 배터리 인증 기준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 생산업체들은 당장 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워 중국 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해외 업체들을 배제시키고 될성부른 중국 업체들만 육성하기 위한 조치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 시각이지만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보복의 성격도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금한령(禁韓令ㆍ한류 콘텐츠와 배우들의 방송 금지 조치)에 이어 산업계에도 사드 삭풍이 가시화할 지 우려된다.
23일 전기차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최근 새로운 전기차 배터리 모범규준 및 인증 규정에 관한 방안을 공개했다. 공업정보화부는 관련 업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뒤 내년부터 이 규정을 시행하겠다는 계획이다.
규정에 따르면 인증에 필요한 리튬이온전지의 중국내 연간 생산 능력 기준은 기존 0.2기가와트시(GWh)에서 8GWh로 40배나 높아진다. 또 최근 2년간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하는 기준도 새로 생긴다. 강화된 인증 기준을 통해 전기차 배터리 업체의 난립을 막겠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4차례에 걸쳐 시행된 그 동안의 인증은 모두 무효가 됐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모두 새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4차 심사까지 인증을 받지 못해 연말 5차 인증을 준비하고 있던 국내 업체들은 갑자기 바뀐 새 기준을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에 있다. LG화학과 삼성SDI의 중국내 배터리 생산 능력은 각각 2~3GWh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인증에 필요한 생산 능력을 갖추려면 단기간에 중국 공장 설비를 2~3배 증설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증을 받지 못한 LG화학, 삼성SDI의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차는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없다. 중국 정부는 전기차에 대해 차량가의 최대 절반 수준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보조금 지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중국에서 국내 업체들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1~3분기 22만4,535대의 전기차가 판매된 중국은 미국(11만262대)과 유럽(10만5,241대)의 판매량을 합친 것보다 큰 세계 최대의 전기차 시장이다.
변수는 중국 배터리 업체 중에서도 이 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곳이 BYD와 올티멈나노 등 2곳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기존 기준으로 인증을 받은 중국 배터리 업체는 5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중국 업체들도 기준을 충족시키기 힘든 상황이라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이 조금은 완화될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규정은 의견 수렴 과정에서 바뀔 수도 있다”며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manbok@hankookilbo.com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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